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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나혜석, 누구인가

정월 나혜석, 누구인가

▶ 정월 나혜석, 그녀는 누구인가.
1896년 수원에서 태어난 나혜석은 한국 최초 여성 서양화가이자 여권신장을 주장하며 스스로에게 솔직한, 그래서 더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서울 진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13년 일본의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 입학, 우리나라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유화를 공부한 여성 서양화가로 기록됐다.
1918년 서울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초창기 ‘이른 아침’(早朝)과 같은 목판화로 민중의 삶을 표현했다. 22년부터 10여 년간 해외 여행을 떠났을 때를 제외하곤 매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해 입선과 특선을 한 화가였다.
문학에도 소질이 있던 그녀는 동경유학시절부터 여권신장에 관한 글을 여러 편 발표했고, 19년 3·1운동 때는 여학생들을 만세운동에 참가시키기 위해 김활란, 박인덕, 신준려, 김마리아 등과 함께 이화학당에서 비밀 회합을 가진 죄로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녀보다 진보하지 못한 사회는 나혜석의 예술적 측면만 부각하고, 파격적인 결혼과 이혼을 선택했던 삶은 정작 본인과 상관없이 감춰야 하는 것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최근 ‘여성도 인간’이라는 주장을 일상에서 토해냈던 나혜석의 삶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나혜석은 일본 유학시절 좋은 혼처가 나섰으니 공부를 그만 두라는 아버지에게 맞서 학비를 벌어가며 공부했고, 20년 김우영과 결혼하며 당시는 파격적으로 신문에 약혼식 발표를 하기도 했다.
또 결혼 전 외교관인 남편으로부터 예술활동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받았고, 3남매를 낳았다.
그러나 나혜석은 자신의 그림이 진짜가 아니라는 화가로서의 고민과 가중되는 가사노동, 남편이 자신의 예술을 이해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 등으로 지쳐갔다.
27년 남편과 함께 떠난 3년간의 세계일주 여행에서 새로운 예술 세계에 눈떴고, 서구 여성들의 삶에 주목했다. 그곳에서 함께 예술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남자 최린과 사랑에 빠졌고, 결국 귀국 후 이혼을 한다.
현모양처가 여성의 모범상으로 굳어버린 시대에 자기의 예술을 추구하다가 이혼을 당하고 빈몸으로 쫓겨난 나혜석. 사회의 냉대와 경제적 궁핍을 겪으며 해방 후 서울의 한 양로원에 맡겨졌으나, 행려병자로 48년 무연고자 병동에서 아무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류설아기자/rsa119@joongboo.com
게재일 : 2009.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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