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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행 //-------

아름다운 동행 //-------
디크브네에셀켈리브 2009/04/07 18:41:58 [조회 : 148]
아름다운 동행


하모니카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안타깝도록 향기로운 음악이었다.
하모니카 속에는 수많은 천연색 나비의 번데기가 들어 있는 것일까,
사각의 칸칸 속으로 훈훈한 입김을 불어넣어 불어낼 때마다,
또 빨아들였다가 불어낼 때마다,
봄을 맞은 듯 그 번데기들이 순간순간 나비떼로 변했다.

사각의 칸칸 속에서
눈저리도록 화려한 나비들이 떼지어서 펄펄 날아나왔다.
형형색색의 무늬를 파닥파닥거리며 사방팔방으로 흩어져나가,
행인들의 귓속으로, 심장 속으로 날아들었다.
거기에 닿는 순간, 유리가 깨지듯 수천만 조각으로 바스라져,
대동맥을 타고 실핏줄로 실핏줄로 흘러들었다.
온 육신의 갈피갈피에 총총 박혀들었다.

*

저 남녘줄기의 한켠, 어느 소도시.
하얀 함박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까치 뱃바닥의 하얀 솜털같은 흰눈이, 목화다재에서 터져나오는 하얀 솜꽃같은 흰눈이, 그 탐스러운 함박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아낌없이 아낌없이 쏟아져내리는 하얀 점, 점, 점... 지상은 지상이라기보다 흰구름 위이거나 흰구름 속인 듯했다.

그들은 그 소도시의 번화가, 대로변에 앉아 하모니카를 불고 있었다. 한 쌍의 부부였다. 언제나처럼 휠체어를 타고 나란히 앉아 함께. 마치 한 사람이 부는 것모양 음정도 박자도 한 땀의 어긋남이나 흐트러짐이 없었다.

남편은 맹인이었고, 아내는 두 다리가 온전하지 못했다. 남편은 태어날 때부터 눈동자가 없어서 앞을 볼 수가 없었고, 아내는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를 못 쓰게 된 것이었다.
한 지붕 아래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 아내의 두 눈은 남편의 두 눈 역할까지 해왔고, 남편의 두 다리는 아내의 두 다리 역할까지 해왔던 것이다.

이 세상으로 와서 첫울음을 터트린 지도 어느 덧 여든일곱, 여든아홉 해. 가까운 세월 너머에 참 넘기 힘들다는 아흔고개가 거만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머리에 하얀 모시바구니를 씌워놓은 듯하고, 속눈썹과 콧속의 털까지 하얗게 세어버렸다.

그토록 많은, 둥근 나이테를 온 육신에 칭칭 휘감고 있지만, 얼굴이 조금도 추해 보이지 않고, 그저 넉넉하고 온후하고 정답게만 느껴졌다. 주름살은 주름살이라기보다, 보는 이들의 주름살을 펴주는 주름살 아닌 주름살, 세월이 창조한 훈장처럼 느껴졌다. 특히 천진스럽게 쌔물쌔물 웃는 그 모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천금과도 같은 빛나는 보물이 아닐 수 없었다.
모르긴 모르되, 어쨌든 아흔고개를 넘지 못하고, 그 기슭에서 삶을 마무리하고, 그 어디쯤의 양지녘에 해골을 묻을 것만 같았다.

그들은 계속 소리 맑은 음표를 펄펄 날려보냈다. 기력이 쇠잔해질대로 쇠잔해져, 하모니카를 부는 것마저도 몹시 힘겨웠지만 잠시도 쉬지 않았다. 업보(業報)라도 되는 양 있는 힘을 다해가며 하모니카를 불었다.
그 앞에 커다란 옹기항아리가 하나 놓여 있었다. 허리께까지 땅에 묻어, 시멘트로 단단히 고정시켜놓은 상태였다. 크기가 매우 크지만, 그에 걸맞지 않게 아가리가 매우 좁은 항아리였다.
그 옹기항아리의 앞가슴에 어떤 띠가 둘러져 있었다.

사랑을 실천합시다.
네 마음의 하늘에 까치가 날면
너를 대하는 타인의 가슴에 까치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네 마음의 하늘에 까마귀가 날면
너를 대하는 타인의 가슴에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들리리라.


그 항아리는 다름아닌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성금모금함이었던 것이다.
봄나비떼처럼 풀풀 흩어지며 이어지는 하모니카의 맑은 음악소리, 지나쳐가는 행인들을 계속 불러들였다. 그들을 에워싸고 아름다운 음표에 취해 있다가, 흐뭇하고 흔쾌한 마음으로 값진 성금을 보태었다.

겨울날씨치고는 퍽 푸근한 날씨였으나, 오후가 되자 동장군의 독한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천상의 신(神)들이 하얀 거품꽃을 무자비하게 쏟아붓는 것일까, 천사들이 자신들의 하얀 웃음소리를 무자비하게 쏟아붓는 것일까. 끊임없이 끊임없이 쏟아져내리는 하얀 함박웃음, 함박웃음, 함박웃음... 이내 온 지상을 하얗게 덮어버렸다. 지상은 지상이라보다 둥근 사과의 하얀 속살 속인 듯했다.

예순다섯 해 전이던가,
맹인남편은 아내를 등에 업고, 아내가 길을 일러주는대로 걸음을 옮겨, 집 근처의 황강변에 바람을 쐬러 나갔다. 붕어비늘을 뿌려놓은 듯, 햇빛이 반사되어 은빛 물비늘 반짝거리며 유유히 흘러가는 황강(黃江)물.
그 시냇가의 서걱서걱거리는 갈대밭 속에서, 누군가가 숨겨둔 손가방을 하나 발견했다. 그 속에 수백만원을 뭉쳐놓은 돈다발을 하나 들어 있었다. 천만뜻밖이었다. 그 당시에 그 정도의 돈이면 어마어마하게 큰 돈이었다.

그들은 심한 내적 갈등에 시달렸다. 경찰에 신고하여 주인을 찾아줄 것인가, 아니면 행운이라 생각하고 자신들이 가질 것인가.
마음의 방에 까마귀떼가 날아다니고, 뒤이어서 까치떼가 날아다니고, 또 뒤이어서 까마귀떼가 날아다니고...
그러다가 까마귀떼와 까치떼가 한데 뒤섞여 날아다니며, 서로 패를 지어 싸움을 벌였다. 이내 검은 까마귀들이 까치들의 목을 쪼아 땅바닥으로 떨어트렸다. 까치무리는 피를 흘리며 쓸쓸히 죽어갔다.
오랜 고민 끝에, 그 돈다발을 자신들이 갖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날 밤, 맹인남편은 꿈 속을 헤매었다.
한쌍의 잉꼬처럼, 그 부부는 마주앉아 있었다. 갑자기 펑, 펑, 소리를 내며 천장 한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두 개 뚫렸다. 그 구멍을 통해, 그 위에서 구렁이 두 마리가 툭툭 떨어져내렸다. 거대한 구렁이였다. 아, 꿈틀꿈틀거리는 그 징그러운 몸뚱아리!
두 구렁이는 그들의 육신을 칭칭 휘감고, 점점 더 세차게, 점점 더 세차게 막 조아댔다.
맹인남편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온 전신이 땀에 절어 있었다.

남편은 근심스럽기 그지없는 얼굴이었고,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아내 역시 몹시 걱정스러워하는 안색이었다. 틀림없이 그 돈다발을 가진 것에 대한 죄값이라 생각하고, 곧바로 경찰을 찾아가 그것을 건네주었다. 잠시나마 푸른 마음의 방에 검은 까마귀떼를 날린 것이 못내 후회스러웠다.
그들은 그 꿈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나름대로 거듭 거듭 반추하고 또 반추해보았다.
(중략)


그들은 아담한 가와집 한 채를 소유하고 있었다. 200여 평 남짓, 마당이 꽤 넓었다.
그 무렵, 그 집의 앞마당 한가운데로 큰 대로(大路)가 뚫리게 되었다. 머잖아 그곳쯤이 그 소도시에서 으뜸가는 번화가가 될 것임을 예고해주는 것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그 넓은 앞마당을 소도시에 기꺼이 희사(喜捨)했다. 조건이 있었는데, 그렇게 항아리를 설치해놓고, 성금을 모금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제안이 흔쾌히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 이후부터 매일매일 하모니카를 불며 성금을 모아왔던 것이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눈보라가 휘몰아치면 눈보라 속에서, 비바람이 휘몰아치면 비바람 속에서, 따뜻하고 숭고하기까지 한, 그 일을 변함없이 계속해왔던 것이다.
그것은 고되고 고된 고단한 노동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오늘날까지 이가 빠진 날이 거의 없었다. 비장애인도 감당해내기 힘든 일을 무려 65년 간이나 온 몸 온 마음으로 실천해 왔던 것이다.

날이면 날마다 그렇게 하모니카를 불다 보니, 날로 달로 그 솜씨가 도를 더해갔다. 듣는 사람들마다 귀신도 탄복할 솜씨라며, 무릎을 치며 탄성과 찬탄을 쏟아냈다. 이 입에서 저 귀로, 그 입에서 또 다른 귀로 전해지고 전해져, 산 너머 너머, 물 너머 너머에 있는 사람들의 귀에까지 널리 널리 퍼져나갔다.

그 신기(神技)에 가까운 하모니카 소리를 듣기 위해, 항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향기맑은 하모니카 소리에 깊은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그들의 훈훈한 마음에 더 깊은 감동을 받고, 망설이지 않고 성금을 보탰다.
더러는 꽤 큰 돈다발을 넣어주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금반지나 금귀걸이같은 패물을 빼내 넣어주는 이도 있었다.

또 총명한 눈동자가 있고 사지가 멀쩡하면서도, 그날껏 가파른 오르막길에 놓인 힘겨운 이웃들에게 베풀지 않고 살아온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둘레짜고, 그들을 둥글게 에워쌌다, 햇무리가 해를 에워싸듯. 진짜 한가운데의 그들은 햇덩이인 듯하고, 에워싼 행인들은 햇무리인 듯싶었다.

그날따라 하모니카 부는 일이 몹시 힘에 부쳤다. 그렇지만 식은 땀을 흘려가며 더 열심껏 하모니카를 불었다.
무참하게 쏟아져내리는 하얀 눈송이들이 온 몸에 달라붙어, 차라리 한 쌍의 눈사람이었다. 생명을 품은 움직이는 눈사람이었다.

아, 운명이란 말이던가, 그날 초저녁께, 하늘의 신(神)이 맹인남편을 천상의 나라로 데려가고 말았다. 휠체어에 앉아 하모니카를 불다 그대로 숨을 거둔 것이었다.
아내는 남편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흑흑 흐느껴 울었다. 며칠 전부터 남편의 죽음을 예감하고, 기쁜 마음으로 길 떠나보내리라고 생각해왔던 아내. 막상 남편이 이승의 끝을 지나서, 그 너머 저승세계의 삶의 터전으로 훌쩍 떠나가자, 가슴 속에 골깊고 이랑높은 아픔의 물결이 출렁출렁 일렁거렸다.

진실로 그녀는, 남편이 남기는 발자국에 자신의 발자국을 포개놓으며, 그 뒤를 따라가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여보, 영감. 혼자서 가면 어떡해요. 나도 데려 가야지요. 눈동자도 없으면서 어떻게 저승을 찾아갈려구 그렇게 혼자서 훌쩍 가버리는 거에요. 어서 나도 데려 가세요...”
천상의 하늘신이 그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 것일까, 뒤이어서 아내도 한평생 애착스럽게 살아온 이승의 굽이굽이를 영영 등지고 말았다.
하늘신도 그것을 축복해주는 것일까, 머리맡의 하늘에, 그들의 엄지손가락의 지문, 거대하게 확대된 붉은 지문이 찍혀 깃발처럼 펄럭이다가 곧 사라졌다.

그들이 이승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숱한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모여들었다. 살다간 한평생, 힘겹고 고달픈이웃을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헌납한 그들을 애도하고 또 애도하였다. 사람사람의 속눈썹 끝에 아롱아롱 눈물방울이 방울방울 아롱거리고, 그 무게를 못이겨 양 볼로 줄줄 타내렸다. 가슴가슴에 슬픔과 안타까움이 뒤섞여 파도치며 출렁거렸다.

갑자기, 소리없이 흐느끼던 한 여인이 자신도 몰래 크게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슨 신호라도 되는 양, 안으로 안으로만 아픔을 꾹꾹 삼키며 절절이 슬퍼하던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따라 울기 시작했다. 너나할것없이 큰소리로 마음놓고 울었다. 이내 그 소도시는 유장한 울음강, 드넓은 눈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그것은 슬픔의 울음이면서 슬픔의 울음이 아니었다. 아픔의 눈물이면서 아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살다간 한평생, 그토록 처절히 ‘사랑’을 몸소 실천한, 그 부부에 대한 경의와 감사를 표하는 울음이고 눈물이었다. 또한 가슴의 갈피갈피에 에이며 파고드는, 그것이 빚어내는 감동의 울음이고 눈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가파른 인생길을 걸어가는 타인의 삶을 위해 살겠다는 다짐의 울음이고 눈물이었다.
점점 더 커져가는, 거기 피어난 한 송이의 거대한 울음꽃, 슬픔과 경의, 감사와 다짐의 그 울음꽃. 시간이 흐를수록 그 흐느낌의 울음꽃이 점점 더 커지고 커졌다.

멀리에서 보면, 거기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이 크나큰 해바라기꽃(울음꽃)의 얼굴에 빽빽하게 박힌 수많은 씨앗인 듯, 그 씨앗들이 흐느껴 우는 듯.
크나큰 붕새가 날개를 퍼득이듯, 그 거대한 울음꽃의 둘레를 에워싼 그 노란 꽃잎들이 퍼득퍼득 나래치자, 그 흐느낌의 울음꽃이 저 무한한 우주공간을 떠돌기 시작했다. 아프게 기쁘게 울음우는 숱한 사람들을 실은, 해바라기꽃같은 그 흐느낌의 울음꽃, 행성처럼 도도히 우주공간을 떠도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온 누리 삼라만상에 아픔과 감사와 경의로움이 넘쳐 흐르는 듯싶었다.

잔인하리만치 무더기 무더기로 쏟아져내리는 하얀 눈송이가 점점 더 푸짐해졌다. 천상의 신(神)들이 하얀 무명천을 조각내어 무자비하게 쏟아붓는 것일까, 흰송이가 점점 더 굵어졌다. 까치 뱃바닥의 하얀 솜털같은 흰눈이, 그 솜털이 함박함박 뭉쳐져 푸지게 푸지게 쏟아져내리는 것이었다.

하얀 눈보라가 무참하게 쏟아져내리는 그 날,
맹인남편의 영혼은, 두 다리를 못쓰는 아내의 영혼을 등에 업고,
아내가 길을 일러주는대로,
이승과 저승의 경계인 저 하늘속의 강물을 건너서,
저 푸르게 넘실거리는 하늘강물 너머의 저승세계로 갔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저승으로 간 것처럼 한 사람의 발자국만 남기며, 그렇게.

틀림없이 저승의 문턱에
그들을 환영하러 마중나온,
무형무색의 기다림의 가슴행렬이 줄지어 서 있었을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

또한,
한 사람이 저승으로 간 것처럼 한 사람의 발자국만 남기며 갔듯이,
나머지 한 사람의 발걸음은,
지금 이 순간도,
이승의 어딘가에서 지구를 쿵쿵 울리며, 그렇게 이 지상을 걸어다니며,
이승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가르치고 있을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

*

그 소도시의 사람들은 중지(衆志)을 모아, 그 부부가 수십 년간 하모니카를 불던 바로 그 자리, 그 길가에 그분들의 안식처를 만들었다. 한 무덤 속에 나란히 편안히 뉘어, 합장을 했다.
뜻있는 사람들에게 향수(香水)를 하나씩 기증받아, 무덤 속에 함께 넣었는데, 수천 개가 넘었다.
그 앞에 큰 빗돌을 하나 세우고, 글을 새겼다.

님들이시여.
이승에서의 그 숭고한 사랑의 마음은,
이 땅에 꽃이 피고 새가 우는 한
이 땅의 꽃이 되고 새가 될 것입니다.
저 푸른 저 하늘에
황황히 빛나는 저 태양은
영원히 꽃을 피우고 새를 울릴 것입니다.

님들이시여,
고이 고이 영면(永眠)하소서,
편히 편히 영면(永眠)하소서 !



(참고)
같은 방이라도,
스님이 그 방에 들어가서 살면 염불창고(절)가 되고,
도둑이 그 방에 들어가서 살면 장물창고가 되는 것입니다.
이상, 김/세/동 . 나울시 . 솔빈솔토(率濱率土)

앞으로는,
디크브네에셀켈리브 <------- 이것으로 닉네임을 바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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