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듀어든] 세계 축구계에서 정몽준의 시대가 끝나가는가

[듀어든] 세계 축구계에서 정몽준의 시대가 끝나가는가

관심지수
23

글씨 확대 글씨 축소

세계 축구계에서 가장 힘센 인물이 되려던 남자 정몽준의 시대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걸까? 정몽준 FIFA 부회장에게 있어 지난 금요일의 선거 결과는 적지 않은 타격이었다. 이제 정 부회장은 자신을 FIFA에서 밀어내려는 세력과 정면으로 맞서게 됐다. 꽤 위험해 보이는 상황인데, 그가 이 위기로부터 회복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에서 정몽준 FIFA 부회장은 다재다능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거대 기업인이자 정치인이기도 한 그는 축구계에서도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정몽준 부회장은 몇 가지 실수를 만들어냈던 것 같다.

정 부회장은 한국 축구를 위해 여러 가지 위대한 일을 해왔다. (물론 최근의 행보는 축구 팬들의 토론이 필요한 대목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축구계에서 정몽준은 ‘신’과 같은 존재였다. 대표팀 경기가 열릴 때면 그는 기자들과 악수를 나누기 위해 프레스석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데, 내가 지켜본 그의 위세는 정말 대단했다.

FIFA 부회장이기도 한 그는 세계 축구계의 파워맨 중 하나다. 정 부회장은 FIFA 회장의 야망을 갖고 있을까? 그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한 적은 없다. 그저 ‘저는 굉장히 바쁜 사람이기에 현재로서는 FIFA 회장이 될 여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만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정 부회장은 대한민국 대통령이나 FIFA 회장, 둘 중에 한 자리는 원하는 것 같다. 그가 갖고 있는 큰 야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현실적으로 보면 정 부회장이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확률보다는 FIFA회장이 될 확률이 더 높은 듯하다)

그러나 치열한 라이벌 빈 함맘이 FIFA 집행위원 선거에서 이겼다는 소식은 정 부회장의 FIFA 대권 도전을 힘들게 만들 것 같다.

정 부회장과 빈 함맘의 대결구도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최근 함맘은 나와의 인터뷰에서 정 부회장에 대한 매우 비판적인 발언들을 쏟아냈었다. 함맘은 거침없이 “정몽준은 축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 “정몽준은 페어플레이를 모른다”등의 이야기를 했다.

치열하고도 난잡한 싸움이 된 이번 선거에서 함맘은 셰이크 살만에 23대 21의 승리를 거두었다. 함맘은 선거 바로 전날 동남아 국가들과 어떤 거래를 시도한 것 같았고, 말레이시아에 위치한 AFC 본부를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철회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함맘은 선거에서 승리했고, 그 결과는 블래터와 함맘의 라이벌인 정몽준 부회장에게 문제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지난 주 블래터 FIFA 회장은 “각 대륙별 축구 연맹의 회장이 FIFA 부회장의 위치에서 FIFA 집행 위원이 되어야 한다” 고 강조한 바 있다. 블래터는 “FIFA 회장이 누구이건 간에, 각 대륙 연맹의 회장이 FIFA 부회장이 되는 것이 함께 일하기에도 좋고 축구 발전을 위해서도 더 나을 것이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선거에서 이긴 자들에게는 이러한 일을 추진할 권한과 힘이 생긴다. 따라서 FIFA 부회장으로서의 정몽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해볼 수도 있다. 블래터와 함맘은 사이좋은 동지들이고, 함맘은 최근에 벌어진 것과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빈 함맘에게 대항한 사람들은 많았지만, 함맘은 중요한 전투마다 자신의 적들을 모두 물리쳐왔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선거에서 정 부회장이 실수를 저질렀다고 보고 있다. 정몽준이 셰이크 살만을 지지했다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 부회장은 좀 더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었다. 나는 셰이크 살만과의 인터뷰를 2차례나 진행했었다. 살만은 신사로서의 매너와 프로페셔널한 태도를 갖추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자신을 더욱 알리기 위해 도움을 얻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아시아 각국의 협회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셰이크 살만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정 부회장이 좀 더 나서 ‘살만이 함맘을 꺾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면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은 충분했다.

아시아에서 함맘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정몽준밖에 없기 때문이다. 살만의 선거 캠프는 ‘정몽준’이라는 이름을 필요로 했지만, 정 부회장은 자신의 지지를 강하게 나타내기 보다는 조용히 머무는 편을 택했다. 살만은 정몽준과 부회장처럼 카리스마를 갖춘 동지의 힘을 이용해 마음을 결정하지 못한 협회들을 설득해야만 했었다.

정 부회장도 마지막에 가서는 입을 열었는데, 정 부회장의 발언은 빈 함맘이 했던 것과 똑같은 개인적인 공격의 일종이었다.

“함맘은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처럼 행동하고 있다. 정신적인 문제를 갖고 있는 듯한데, 병원에 가보라고 충고하고 싶다”

정 부회장의 이와 같은 발언은 좋은 기사거리들을 제공했지만, 살만의 선거 전략에는 커다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정 부회장은 자신의 이미지와 힘을 바탕으로 함맘이 패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다. 인신공격보다는 논리적인 설득으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함맘이 먼저 시작했다고 해서 똑같이 받아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아시아 축구의 미래를 더 생각해야 하지 않았을까?)

물론 정 부회장이 사람들이 모르는 물밑 작업들을 진행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과가 말해주듯, 모든 것들이 좀 부족했던 것 같다. 손에 흙을 묻힐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은 원하지 않던 결과가 나와도 불평할 수 없는 게 세상의 이치이기도 하다.

=존 듀어든은 런던 정경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 을 졸업했으며 풀타임 축구 저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가디언, AP 통신, 축구잡지 포포투(영국, 한국), 골닷컴에 아시아 축구에 대한 심도 있는 기사를 송고한다. 현재 서울에 거주 중인 그는 호주 ABC 라디오와 CNN에서도 활약하는 국제적인 언론인이다.

번역: 조건호 (스포츠 전문 번역가)

더 많은 듀어든 칼럼을 보고 싶다면 → http://news.nate.com/hissue/list?mid=s0304&isq=3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