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경선직전 긴박했던 친이계
#.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을 사흘 앞둔 지난 18일의 일이다. 친이계 한 핵심 의원은 청와대 정무팀을 두드렸다. 이상득 의원의 ‘지원설’과 함께 친박계 최경환 의원(정책위의장)과 손잡은 황우여(원내대표) 후보가 급부상하고, 이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 논란으로 시끄럽던 때였다. 그는 통화에서 “왜 의원들을 헷갈리게 만드느냐. 청와대의 뜻이 뭐냐”고 다그쳤고, 정무팀 관계자로부터 “헷갈릴 게 없다. 황우여·최경환은 아니다”라는 답변을 받아냈다.
#. 같은 날 친이계 한 중진 의원은 일본에 있던 이상득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원설’ 이후 입장이 묘한 이 의원과 가까운 의원들을 모두 ‘회군’시키라는 요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회군시키지 않으면 친이계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경고도 곁들였다. 결국 그날 이 의원은 측근 의원 등을 통해 “황우여·최경환 의원을 지원한 적이 없다. 나는 엄정 중립”이라는 뜻을 전했다.
한나라당 원내대표 경선은 ‘친이계의 완승’으로 싱겁게 끝났다. 황우여·최경환 후보가 지난 18일 출마와 함께 ‘화합’을 명분으로 대세를 점하던 것과는 천양지차다. 특히 친이재오계와 친이 소장파 등 비주류가 ‘친이 결집’의 전면에 나서면서 당내 역학구도도 이들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체 며칠간 막(幕) 뒤에선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친이계의 ‘뒤집기’ 작업이 본격화한 것은 지난 19일부터다. 이상득 의원의 ‘최경환 지원설’이 나온 후 마음이 흔들린 온건·중도 성향의 친이계 의원과 이 의원의 직계로 불리는 의원들이 대상이었다. 모두 안상수 의원 쪽에서 “세모표”를 친 인사들이다. ‘작업’엔 정두언·이춘식 의원 등 친이 직계들이 앞장섰다. 수도권 친이계 한 중진 의원은 “19일 하루 동안 여러 통의 전화를 받았다. 청와대의 포용이 거부당한 상황에서 원내대표를 내주게 되면 친박들이 ‘친이가 안 도와줘도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물론 “청와대의 뜻”이란 전언과 함께였다.
물론 이상득 의원의 “엄정 중립”이란 ‘회군(?)’도 한몫 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안 의원이 실제 조사해 봤더니 이상득 라인이 다 ‘세모’로 분류됐다. 이 의원이 황 후보쪽을 고민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친이계에서 세게 치고 나오니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제 다급해진 측은 황 후보 쪽이었다. 황 의원이 20일 밤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정두언 의원이 청와대의 뜻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닌다. 사실이라면 우린 사퇴하겠다”면서 강력 항의한 것은 그 때문이다. 맹 수석은 “그런 일이 없다”고 다독인 뒤 정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무마를 부탁했다.
결과적으로 친이 비주류 의원들이 ‘청와대의 윤허(?)’하에 똘똘 뭉쳐 흐름을 뒤집은 셈이다. 친이 주류로 군림해온 이상득 의원 쪽은 회색지대로 남으면서 내부 구도에도 변화가 불가피하게 됐다. 당장 당직 인선부터 친이 비주류의 부상 가능성이 나온다. 여의도연구소장에 친이재오계 핵심인 차명진 의원이, 사무총장에는 장광근·임태희 의원이 유력하다는 전언이다. 일각에선 친이 소장파인 정병국 의원의 사무총장 기용이 청와대의 뜻이란 이야기도 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