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운명이란 참으로 기구한 것인가 보다. 어떤이는 살아서는 죽은후 보다도 못한 운명이 있는가 하면 ,어떤이는 죽고나서야 다시 살아나는 묘한 운명을 가진 사람도 있다.

노 전대통령이 서거한후 빈소를 찾는 수많은 조문객들을 바라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민심이란 역류를 타기 시작하면 생각의 페러다임 마져도 바꿀수 있는 磁力 을 가진 것일까.

언론에서는 노 전대통령의 死後 에 다시 노풍이 불기도 한다고 적고 있으며 , 야당에서는 지난 참여정부의 공과를 재평가 ,재조명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보인다. 현재의 공용같은 집권 여당인 한 나라당에서도 고인이 남겨놓고간 話頭에 대해 화합이니, 국론 통합이니 하는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왜 지금 에서야 그런 말들이 나오는가.

날밤 지세우며 몰려드는 수많은 조문객의 발걸음에 여,야 할것없이 너무나도 놀랬는가?

불과 일년 몇개월전, 청와대의 주인은 고인 이었다. 인수인계서에 잉크 자욱 마져 채 마르기 전에 투신을 하여 서거를 하였으니 정치에 관심이 없는 순수 국민들이 볼땐 , 자살을 할 정도로 무슨 큰 중죄를 지었는가... 왜 투신 할수 밖에 없었을까..,꼭 그렇게 밖에 할수 없었는가...여러가지 상념들과 생각들이 떠오르게 마련인 것이다. 민심은 안타까움과 슬픔,그리고 분노를 타고 서서히 역류의 흐름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조문객들의 발걸음과 무언의 표정속에는 고인에 대한 추모와 현 정권에 대한 무언의 항의가 동시에 숨겨져 있다고 본다. 그리고는 빈소를 찾아가자, 분향소를 찾아가자, 더 많은 사람이 찾아야 한다, 살아있는 권력에게 보여줄수 행동이란 이 방법 외엔 없지 않는가. 민심은 이렇게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유서깊은 덕수궁 대한문 앞에 분향소가 차려졌다. 경찰은 차벽을 설치했다. 장례의 추모식마져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정권의 분노앞에 더 많은 시민들이 장사진을 이루어 주었다. 한 마디로 현정권의 정치적인 미숙함이 만천하에 드러나게된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그리고 상공에서 내려다본 서울 광장은 파란 잔디를 보호하듯 성벽(차벽)이 아주 잘 만들어져 있다. 민심은 그저 그 광경을 지켜 보고만 있을 뿐이다.

이것이 과연 노풍인가, 노풍 일수도 있고, 반mb풍 일수도 있다. 어떻게 해석 해도 좋다. 그러나 이러한 민심의 역류를 만들어준 1차 공신은 현 정권 이라는 점은 부인할수가 없을 것이다. 불과 6년반 전에 노 전대통령 역시 1.000만표정도를 획득하여 당선된 직전 대통령 이었다. 이것을 너무 쉽게 잊었나? 아니면 500만표 차이의 대승에 기고만장 했는가? 500만표 차이의 그 몰표는 지금 전부 어디가고 20%대만 남았는가?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것이 민심이라고 하지만 , 민심은 언제나 큰 흐름을 타게 마련인 것이다. 현 정권은 출범후 부터 지금까지 과연 민심 이라는 물줄기의 큰 흐름에 동참 했다고 자부 하는가? 그렇다고 자부 한다면, 나는 아무런 할말도 없고, 앞으로도 말하지 않을것이며, 그저 세월을 낚시질 하고만 지낼 것이다.

창업의 일등 반려자인 비주류의 박근혜를 혹시, 노무현과동급으로 취급하지는 않았는가. 아니, 과거권력이었던 노무현 보다도더 심한 압박과 견제를 하지는 않았는가, 떠 오르는 미래 권력의 싻을 아예 도려내기 위해 앞 다르고 뒤가 다른 모습을 정녕 보여 주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항변 할수 있겠는가? 그러고도 화합이니 국민통합이니 하는 말들이 너무도 쉽게 나오는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인다.

한지붕 내의 자기 식구마져도 콩쥐와 팥쥐로 구분하여 갖은 면박을 주는 가정이라면, 죽어버린권력에는 과연 어떠 했겠는가, 하는 추론만 떠오를뿐, 나머지는 상상에 맏겨 버리자. 그것이 오히려 편한 일 인지도 모른다.

비주류의 홀대에 내재 하고 있던 억하 감정에다 노 전대통령의 충격 투신이 가져다준 죽음과 묘하게 엉키어 많은 이들로 하여금 분향소를 찾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무엇인가 무언의 항변을 하듯,,,,

민심은 흘러가는 강물과도 같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 것이다. 물이 흐르다가 바위를 만나면 바위를 휘돌아 흘러간다. 고의로 바위를 뚫어 물을 흐리게 만들지 마라 . 물은 절대 바위를 뚫고 흐르지 않는다. 그러다가 흘러흘러 언젠가는 대해(大海)를 만나 합류 하게 된다.

정치는 흐르는 물과도 같다. 이렇게 흘러가는 물이 바로 민심인 것이다. 민심은 인위적으로는 절대 얻을수 없다는 것도 만고의 진리가 아니겠는가. 민심을 역류하게 만들지 마라.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것, 그것이 곧 정치 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