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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 이종학

사운 이종학
이창식 주필
2009년 06월 29일 (월) 전자신문|14면 경기신문 webmaster@kgnews.co.kr
서지학자 ‘사운(史芸)’ 이종학(李鍾學)이 타계한지 7년째가 된다. 1927년 옛 수원군 우정면 주곡리 244번지에서 태어난 그는 광복 후 고등고시를 꿈꾸며 법학공부를 했지만 학문의 뜻은 이루지 못했다.

6.25전쟁이 끝나고 서울이 수복된 1955년 종로5가에 ‘권득서당’이란 책방을 차렸는데 이것이 평생 동안 책과의 인연이 됐다.

‘서지(書誌)’는 서적(書籍)이란 뜻이다. 서적은 사람의 사상이나 감정을 글자나 그림으로 기록하여 꿰어 맨 것의 총칭인데 도서(圖書), 간책(簡冊), 전적(典籍), 문적(文籍), 서권(書卷), 서사(書史), 서질(書秩), 책자(冊字), 재적(載籍), 서책(書冊), 서지(書誌) 등으로 분류된다. 이종학은 책방 초기에는 헌책을 사고 파는 것을 생계수단으로 삼았으나 역사, 향토사 사료(史料)와 고지도, 희귀 서지 등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파는 것이 아니라 수집하기 시작했다.

1981년 일본을 처음 방문한 그는 일본 육지측량부가 발생한 ‘지도구역일람도’를 입수한 것을 기점으로 50여 차례나 일본을 왕래하며 한일 관련 서지를 눈에 띄는대로 사들였다.

그 속에는 국내 도서관과 정부 기관조차 소장하지 못한 것도 수두룩했다. 특이한 구조로 된 그의 양옥 2층 서가는 수만 점의 귀중 도서로 꽉 차있었으니 ‘보물창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굴지의 서지학자가 됐고, 장목비이(長目飛耳·견문이 널리 미침)의 양명도 누렸다. 부인이 차려준 주안상 앞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담소하던 그때가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 뿐이다.

그런데 서운의 진가는 사후(死後)에 빛났다.

그는 생전 때 독립기념관, 독도박물관, 북한사회과학원 등에 적지않은 자료를 기증한데 그치지 않고, 사후에는 유가족에 의해 2만여 점의 자료를 수원시에 기증, 새로 개관한 역사박물관에 전시, 소장되어 있다.

얼마전 방문한 독도박물관 옆뜰에는 ‘사은 이종학선생 송덕비’가 말없이 서 있었다. 그는 죽었지만, 유물을 통해 우리와 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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