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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 장군

강감찬 장군
이창식주필
2009년 07월 15일 (수) 전자신문|14면 경기신문 webmaster@kgnews.co.kr
수원 화성의 중요 부속시설인 성신사(城神祠) 중건 상량식이 엊그제 팔달산에서 있었다. 1796년(정조 20년) 화성을 축성할 때 화성 완공에 앞서 화성을 지켜줄 사당을 먼저 지으라는 정조의 분부에 따라 같은 해 9월 완공한 것인데 일제 강점기 때 파괴된 것을 이번에 수원시가 시승격 6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중건하게 된 것이니, 이래저래 의미가 크다.

성신사 중건 터에는 얼마전까지 거대한 강감찬 동상이 있었다. 그런데 성신사 옛터로 밝혀지면서 동상은 광교산으로 옮겨지고 성신사는 100여년 만에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당초 제대로 고증을 거쳤더라면 강감찬 동상을 세우지 않았을 것이고, 옮기는 번거로움도 겪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난 일이다. 다만 후인들의 실수가 강감찬 장군에게 누를 끼친 듯 하여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강감찬 장군이 열세 살 때 일이다. 하루는 아버지를 따라 아버지 친구 집에 갔는데 저녁밥상이 들어왔다. 시커먼 보리밥에 된장국이 전부였는데 짜고 써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강감찬은 군말 없이 된장국에 밥을 말아 먹었다. 아버지가 “감찬아, 국과 밥을 맛보고 먹어야지 어쩌자고 단 번에 다 말아 먹느냐.”고 말하자 강감찬이 대답하기를 “이 밥과 된장국은 제 몫입니다. 어찌 달다고 삼키고 쓰다고 뱉는다면 그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닌 줄 압니다.”라고 했다. 밖에서 부자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아버지 친구가 무릎을 탁치고 방으로 들어오더니, “감찬의 됨됨을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맛없는 된장국을 낸 것이니 용서하게. 실은 나에게 과년한 딸이 있는데 내 사위가 되어 줄 수 없겠는가.”라고 청혼을 하였다. 강감찬 부자는 이를 받아들여 결혼했다. 신부는 미인은 아니었으나 육척 장신에 천문지리와 전술전략에 뛰어난 재질이 있어서 강감찬이 부인의 도움을 받았고, 훗날 위기에 처한 고려를 구국하는데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고 전한다. 감음고토(甘飮苦吐)를 식은 죽 먹듯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현대인의 후안무치(厚顔無恥)가 계속되는 한 강감찬 같은 걸출한 위인은 배출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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