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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누가 제방에 구멍을 뚫는가

[백화종 칼럼] 누가 제방에 구멍을 뚫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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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다마(好事多魔)요, 꽃들이 만개하기 전엔 이를 시샘하는 추위가 할퀴고 지나가기 마련인가. 올해는 모처럼 기분 좋게 출발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400억 달러가 넘는 사상 최대의 무역수지 흑자, 400억 달러에 이르는 원전 수출 등의 개가를 올렸었다. 원조 받던 처지에서 원조 주는 위치로 바뀐 최초의 나라가 됐다. 새해 들어서도 동계올림픽에서 망외(望外)의 성적을 거둬 한동안 축제 분위기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해군 초계함 침몰이라는 대형 참사가 발생해 나라를 슬픔과 충격 속에 빠뜨렸다.

악재들, 꽃샘추위인가

여건들의 호전으로 지지율이 오르고, 그래서 이제 제대로 일 좀 해보려나 싶던 이명박 대통령의 심기가 최근 일련의 악재들로 편치 않을 것 같다. 물론 초계함 사건이 이 대통령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불편한 심기는 초계함 사건이 있기 전인 지난 23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 등 참모진을 질타한 데서도 엿보였다. “4대강 사업이 환경과 생명을 살리기 위한 것임을 왜 제대로 알리지 못하느냐. 꼭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하느냐”고 힐문했다. 천주교 주교회의와 조계종 등 불교계가 4대강 사업을 반대하고 나선 데 따른 반응이었다.

세종시 수정 방침에 대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등의 반대로 마음고생을 했을 이 대통령은 어쩌면 4대강 사업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야당이 반대하는데도 야당세가 강한 광주 전남 지역에서까지 이 사업을 환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천주교와 불교계가 이 사업의 전면적인 반대운동에 나서자 현 정부의 종교 편향성 시비 등과도 관련하여 사태를 심각하게 여긴 것 같다.

이 대통령을 편치 않게 하는 일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선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재판이 검찰 쪽에 유리하지 않게 돌아간다는 게 대체적인 관전평이다. 돈을 주었다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진술에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검찰과 한 전 총리 측의 공방이 끝나지 않았고, 최종적으로 재판부가 누구의 손을 들어 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일 한 전 총리의 손이 올라간다면 이는 검찰의 권위 실추에 그치지 않고 그 덤터기는 정권이 쓸 수밖에 없다. 또 그것은 서울시장 선거를 비롯한 지방선거 전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

다음은 여권 인사들의 빈발하는 구설수다. 여권 추천의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은 MBC 인사와 관련 “김재철 사장을 큰집에서 불러다가 쪼인트도 까고 해서 만든 것” 운운함으로써 “큰집=청와대”라는 인상을 심어줘 정권의 방송 장악 음모 시비에 기름을 부었다. 그런가하면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좌파 정권 기간의 편향된 교육으로…아동 성폭력 범죄까지 생겨나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는 보도로 성폭력에 웬 이념이냐는 시비를 불러왔다. 그는 또 조계종 총무원장과 만나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에 대해 현 정권에 비판적인 좌파를 부자 절의 주지로 그냥 두면 되겠느냐는 말을 했대서 물의를 빚고 있다.

이러한 구설들은 물론 말한 사람의 인격과 함께 정권의 실체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겠으나, 일과성 해프닝인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것들이 민심에 미치는 영향은 정부의 큰 정책에 대한 그것 못지않을 수도 있다.

정부 정책들의 성패가 정권에 대한 지지율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이겠지만, 어쩌면 정책들이 민심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도 있다. 실례로 세종시와 4대강 사업처럼 큰 정책에 대해선 시행과정에 찬·반 여론이 비슷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최악의 경우 정권이 철학을 가지고 추진하는 정책이 국민의 지지를 못 받는다 해도 이는 민주국가에선 어쩔 수 없는 일로 크게 억울할 것도 없다. 그러나 여권 인사의 사소한 설화(舌禍)로 민심이 등을 돌린다면 정권으로선 그보다 더 억울한 일이 없을 터이다. 이 대통령과 정권 핵심들은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속담을 허투루 듣지 말고 나사를 바짝 조여야 한다. 정권 중간평가 격인 지방선거가 이제 두 달 남짓이다.

백화종 전무이사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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