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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제멋대로 인허가, 심각한 수준”

“지자체 제멋대로 인허가, 심각한 수준”

한국부동산개발협회 대토론회서 대책 마련 한목소리

A시는 B사업자가 제출한 부동산 개발 계획에 대한 교통영향평가 심의를 10개월 지연했다. 1개월에 한 번씩 교통영향평가를 해야 하지만 1차 심의 후 법적 근거 없이 10개월이나 지나 심의를 해 사업을 지연시켰다.

C시는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이유로 건설 허가 명령을 내리지 않다가 10개월 후 공사를 하도록 했다. D시는 적법한 인허가를 받은 판매시설 공사를 ‘특정업태 입점 불가’를 이유로 갑자기 중단시켰다.

하지만 행정심판을 통해 공사가 가능해졌다. 결국 사업은 수개월 연기됐다. 이들 시에서 사업을 한 사업자는 사업기간이 늘어나면서 금융이자 부담 등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부동산개발업계가 지자체 재량권 남용이 심각하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한국부동산개발협회는 1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부동산개발 핵심쟁점 대토론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피해사례를 공개했다.

개발사업 승인 받으려면 20~25개 기관 거처야

주제발표를 한 건설산업연구원 강운산 연구위원은 “지자체 재량권 남용이 너무 심각하다”며 “최소 34주나 되는 인허가 기간이 너무 길고, 총 사업비의 6.1%이나 되는 과다한 기부채납으로 디벨로퍼들이 사업을 하기 너무 어렵다”고 설명했다.

강 연구위원에 따르면 개발사업 승인을 받으려면 20~25개나 되는 관련 기관 및 부서와 협의를 해야 한다. 한 기관에서 협의한 내용을 다른 기관에서는 수정을 요구하는 경우도 흔하다. 심의 및 협의 과정에서 보완, 반려, 수정, 재심, 조건변경, 임의적 규정 적용 등으로 사업 기간이 예상보다 크게 늘어난다.

예컨대 E시는 판매시설 개발을 위한 인허가 과정에서 ‘민원의 소지가 있는 건축시 개발행위 불허가’를 이유로 건축허가 신청서를 반려했다. 선거를 앞두고 지역 소상인 등의 민원을 반영한 것이다. 사업자는 행정소송을 벌려 1심에서 승소를 하고, 2심을 진행하고 있다.

강 연구위원은 “지자체가 민원, 선거 등 불합리한 사유로 초법적 행정처분을 남발하고 있다”며 “행정심판, 행정소송 등을 통해 사업을 재개하더라도 비용이 증가하고 사업성이 크게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기부채납 총 사업비의 6.1%, 평균 150억원

과도한 기부채납도 문제다. 건설산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기부채납 규모는 총사업비의 6.1%, 평균 150억원이나 된다. 이로 인해 사업 중단을 경험한 부동산개발사도 조사대상의 30%나 된다.

사업과 무관한 기부채납 요구, 사업자간 형평성 훼손 등으로 국민권익위원회에 쌓인 민원도 500여건이나 된다. 강 연구위원은 지자체 재량권을 법정화하고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대안도 제시했다.

법률이 정한 금지 사유 외에는 원칙적으로 개발 사업을 허가하는 ‘거부행위명시제(네가티브 시스템)’을 도입하고, 인허가 과정상의 재량권 행사의 범위 및 내용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

또 중앙정부 차원의 ‘인허가 조정위원회’를 설립하고 인허가로 인해 행정심판이 제기되는 경우 조정을 의무화하는 방법 등도 제시됐다. ‘사전 서면 종합심의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주무부서가 인허가시 사업자에게 사전에 정보 및 보완사항을 알려줘 미리 대비하도록 하자는 것. 강 연구위원은 “거부행위명시제, 사전 서면 종합심의제 등을 도입하면 인허가 절차가 간소화돼 현행 최소 소요 기간인 34주를 21주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 공무원, 심의위원 전문성 높여야

이날 중앙일보조인스랜드 최영진 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종합토론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STS개발 김현석 대표는 “명문화된 규제는 사업성을 검토할 때 다 반영하기 때문에 겁나지 않는다”며 “지자체가 임의로 재량권을 활용해 심의기간을 늘리고 용적률을 줄이면서 사업하기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심의위원들의 자질을 문제 삼는 전문가도 많다. 국토해양부 부동산산업과 백기철 과장은 “자자체 담당자 가운데는 바뀐 제도를 모르는 사람도 많다”며 “자치단체 공무원과 심의위원의 전문성, 자질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남양주도시공사 염형민 사장은 “심의위원들을 투명하게 뽑을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며 “심의위원 수당 등 인센티브를 충분히 줘 투명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힐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기존 시스템을 잘 운용하면 대부분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는 전문가도 많았다. 법무법인 DLS 이승한 변호사는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의 결과가 다른 경우가 많다”며 “행정심판 단계에서 합리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행정심판위원회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정태용 교수는 “인허가 조정위원회 등 별도 조직을 만들기 보다는 기존 법에 지자체에 설치하도록 명시화돼 있는 시민고충위원회를 활용하는 방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국토부 권도엽 차관을 비롯해 업계와 학계, 정부 관계자 등 700명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박일한 기자 jumpcu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