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김용서 시장 측근들의 도리

김용서 시장 측근들의 도리

낙선의 충격은 커 보이지 않았다. 평소 심재덕 시장다운 처세였다. 곧바로 출근했고 결재도 이상 없이 돌아갔다. 퇴임까지의 시간은 그렇게 담담히 흘러갔다. 하지만 그건 그만의 바람이었는지 모른다. 이미 시장실은 찾는 이 하나 없는 절간이 돼 갔다. 약속 없이 들어선 나를 일어나 반겼다.
“당선되시면 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못하게 됐네요.” “그게 뭔데.” “화장실 좋아하시잖아요. 자전거로 전국 화장실 투어 한 번 하려고 했는데.”
심 시장이 급히 A를 불렀다.
“김 부장이 화장실 투어를 구상하는데… 우리가 500만원쯤 지원하면 어때. 시장으로서 마지막 하고 싶은 일이니까 꼭 좀 성사시켜 줘.”
A가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왠지 건성으로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시장실을 나서는 나를 A가 쪽방으로 불렀다.
“김 부장, 우리 입장 알잖아. 시장한테는 말하지 말고 그거 그냥 없던 걸로 해줘.”

뭉개진 심재덕 시장의 마지막 지시
그렇게 심 시장의 ‘마지막 지시’는 묵살됐다. A의 부탁대로 심 시장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가 세상을 뜰 때까지 몇 차례 소주잔을 기울였지만 그 말만은 안 했다. 차마 꺼낼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정확히 8년 된 얘기다.
이번 선거처럼 수원 정치판이 요동을 친 예가 없다. 그 복판에 김용서 시장이 있었다. 그를 중심에 놓고 돌아가는 판이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아군이 적군이 되고, 측근이 경쟁자가 됐다. 후견인이 원수가 되고, 주류가 비주류가 됐다. 5월 이전의 수원과 5월 이후의 수원은 그렇게 딴 세상으로 돌변했다. 모두가 자기를 正道라고 하고, 자기를 義理라고 한다.
이 말을 믿는 사람은 없다. 따지고 보면 모든 게 헤게모니 싸움이다. 그럴싸한 명분은 그저 명분일 뿐이다. 그 뒤에는 너나없이 골방에 몰려다니며 짜 맞춘 약속과 계산들이 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다만 끼어들 가치가 없어 보이니 모른 척 할 뿐이다. 중요한 건 김 시장이다. 이 難場 뒤에 김 시장 혼자만이 외롭게 남았다.
그러면서 측근들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따지고 보면 김 시장에게 측근은 8년의 자산이자 8년의 부채다. 김 시장이 있어서 측근이 있었고, 측근이 있어서 김 시장이 있었다. 그로 인한 功도 있었고, 그로 인한 過도 있었다. 김 시장과 측근들은 그렇게 8년을 부대끼며 살아왔다. 이제 그 권력이 서서히 서산을 넘어가며 측근들을 뒤돌아보고 있다.
우연히 들었다. 김 시장의 ‘새벽 운동’에 파트너들이 사라진다고.
김 시장의 새벽운동은 측근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였다. 새벽 운동에 파트너가 된다는 것은 더 없는 영광이었다. 새벽 캄캄한 아파트 밑에 차를 대기시키는 공무원도 있었다. 잘못 맞은 공에도 ‘not bad(나쁘지 않습니다)!’를 외쳐주는 공무원도 있었다. 김 시장과 함께 차를 타고, 잔디 위를 걷는다는 건 더 없는 자랑거리였다. 그러던 새벽운동에 요즘 사람이 없다고 한다.
벌써들 떠나는 것인가.
측근의 입은 늘 달콤한 속삭임이었다. ‘Yes’를 달고 살았다. 언론사와 맞댐을 할 때도 ‘내가 중부일보 끊었습니다’라며 무릎맞춤을 하던 사람들이다. 크고 작은 일이 터질 때마다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라며 방패막이를 자처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입에서 김 시장은 늘 완벽하고 훌륭한 시장이었다. 그랬던 ‘입’들이 이제 듣기에도 민망한 말들을 막 쏟아내고 있다.
벌써들 평가를 시작한 것인가.

측근의 도리도 봐줄 수 있는 시대
이러면 안 된다. 달라지면 안 된다. 돌아서면 안 되고, 상처 주면 안 된다. 8년의 역사를 함께 달려온 사람들이다. 영욕의 모든 業에 함께 올라 탄 사람들이다. 그동안 닫았던 입이라면 계속 닫아야 한다. 그동안 따라 왔던 길이라면 계속 따라가야 한다. 그렇게 하더라도 남은 시간은 한 달뿐이다. 주군에게만 유종의 미를 강요하면 안 된다. 측근들에게도 똑같은 책임이 있다. 우린 그걸 道理라고 부른다.
민선 5기를 맞았으면, 이제 수원의 역사도 그런 도리를 따질 때가 됐다.
심재덕 시장의 시대는 갔고, 김용서 시장의 시대도 가고 있다. 다 잘해 보려고 발버둥친 사람들이다. 當代는 언제나 亂世다.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난세를 헤쳐 나갔을 뿐이다. 추구하는 바가 달랐고, 쳐다보는 곳이 달랐을 뿐이다. 얼마든지 아름다운 퇴임식장에 올라설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걸 뭐라고 할 공무원도 없고 속 좁게 째려 볼 후임 시장들도 아니다.
측근 공무원 A의 추억. 그 아픔은 8년 전 심재덕 시장으로 끝내자.
김종구/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