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에 출마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와 무소속 박원순 후보 간에 있었던 공중파 TV 토론은 시청하지 못했다. 아니 시청할 필요가 없었다. 그보다 먼저 오전에 있었던 관훈클럽 토론회가 더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나지 않아 가 볼 수도 없었고 TV 중계도 없어 실시간 흘러나오는 포털의 뉴스만 검색해 보고도 공중파 토론은 더 이상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제 제 1라운드 격인 관훈클럽 토론회를 참관한 일선 취재기자들의 입에서 솔솔 흘러나오는 종합 관전평은 나경원이 판정승을 거두었다는데 이견이 없었다고 한다. 들려오는 관전평을 귀동냥 해 보았더니 미모가 뛰어난 나머지 항상 콘텐츠 혹은, 이미지 정치인으로 포장되었던 나경원이 제법 내공을 쌓고 나온 모양이다. 숨은 실력이 꽤나 있었고 보기보다는 전투력도 상당했다고 한다. 이런 평가를 미루어 보면 그동안 나경원은 서울시장을 위해 준비를 잘 하고 있었던 것으로 유추가 된다.
반면, 박원순은 시민운동가 출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하긴야 박원순이 시민운동을 한 기간은 참여연대 시절뿐이었고 그 이후에는 사회적 기업인 아름다운 재단 활동이나 희망제작소 일에 주로 관여하였으니 시민운동과는 제법 거리가 먼 경영자의 역할이 더 어울렸던 것이다. 아름다운 가게가 전국에 130여개 된다면 가게에 투자되는 임차보증금이나 레이아웃(인테리어) 비용은 상당히 들게 마련이다.
자기 재산이 마이너스라는 장본인이 막대한 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지 않는 한, 여기저기서 남의 돈을 끌여 들이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침 먹이 감은 사방에 늘려있었으니 시민운동가 출신이라는 이력서 상의 경력은 불법과 탈법에 익숙해 있었던 대기업들에게는 저승사자와도 같았을 것이다.
일반 시민들에게 시민운동가의 모습을 떠 올려 보라고 하면, 그저 시민운동가라는 말 그대로, 정부의 정책에 사사건건 시비나 걸면서 목소리를 높이다가 수가 틀어졌다하면 걸핏하면 길거리로 나가 한 줄 멋지게 적은 피켓이나 들고 구호를 외치거나 심지어는 촛불가게나 기웃거리는 모습만 익숙하게 연상 될 뿐, 미국의 카터 전 대통령처럼 직접 망치나 톱을 들고 지붕위에 올라가 못질하는 그런 순수한 장면이 기억되는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뉴스를 종합해 보면 박원순에게는 아직 준비된 정책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다. 박원순 캠프를 보면 명색이 여러 정당이 모여 연합 선대위를 구성했다고 하지만 이런 보도를 접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은 승객은 보이지 않는데 사공이 너무나 많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 캠프라면 일목요연하게 정립된 정책 보다는 이 당, 저 당에서 주장하는 정책이 뒤죽박죽으로 혼재되어 중구난방 식으로 나타날 개연성도 다분한 것이다. 앞, 뒤가 맞지 않는 대표적인 것이 서울시 부채 축소문제와 8만호 주택 신규 건설에 있었다. 내용은 이미 알려진 바가 있으니 논외로 한다.
싸움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정공법이 가장 가치가 있다. 정공법이란 상대의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치는 것을 말한다. 나경원이 각종 의혹을 제기하자 박원순은 다소 신경질적으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이것은 정공법이 아니다. 상대가 의혹을 제기하면 의혹을 제기한 상대방에게 꼼짝달싹할 수 없는 증거를 들이 밀면서 되치기를 하는 것이 정공법인 것이다. 박원순은 증거를 내 놓는 대신에 그런 의혹 제기를 네가티브라고 공박했다면 자신이 밀리고 있음을 인정한 셈이 되고 마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나경원이 병역문제를 물고 늘어지자 SNS를 통해 젊은이들의 적개심과 동정심을 유발 하는듯한 내용의 글까지 올렸다고 하니 이런 것이 바로 시민운동가 출신의 특징일 것이다.
수도 서울의 시정은 시민운동 경력밖에 없는 후보자가 하기에는 역부족인 자리다. 그리고 정부와 긴밀하게 협의 할 것도 많고 정부의 지원도 상당히 받아야 하는 자리이므로 정치세력의 뒷받침이 있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한 것이다. 박원순은 무소속이다. 박원순 주위에는 이해관계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 이 당, 저 당에서 파견 나온 지원 세력이 대부분이다. 만약 당선이 된다고 해도 외줄 위에 올라선 삐에로가 될 가능성도 전혀 부인할 수가 없다.
차라리 민주당이든 민노당이든, 아니면 유시민 당이든,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박원순의 정체성에 더 어울릴 것이다. 이 당을 선택하면 저 당의 지원이 없을까를 염려하고 저 당을 선택하면 이 당의 지원이 없을까를 염려한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시민운동가 출신의 전형적인 정치적 눈치 보기의 극치일 것이다. 어쨌거나 어제 일합을 겨뤘으니 지금 이 순간에도 지지율 격차는 좁혀지고 있을 것이고 제2,제3의 토론이 끝날 때쯤이면 상황의 변화는 상당히 생겨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