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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소름 끼친다

자칭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소름 끼친다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

로베스피에르,레닌,스탈린,히틀러,모택동,폴 포트도 세상을 자기 뜻대로 디자인하려
세상을 피바다로 만들었다
강철군화

박원순 변호사의 학력위조 논란과 관련해, 교보문고 등 인터넷 서점 사이트들에서 박 변호사가 지은 책들을 검색해 보았다. 특히 인터넷교보문고 사이트의 경우, 대개 출판사에서 제공한 저자 이력과 책 소개를 그대로 올리는 경우가 많아 주목했다. 아니나 다를까, 교보문고 사이트에서 소개하는 박원순 변호사 이력에는 ‘서울대 법대 중퇴’라고 되어 있는 것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인터넷영풍문고에서도 박 변호사의 이력이 ‘서울대 법대 중퇴’라고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박원순 변호사가 자신을 ‘소셜 디자이너’라고 소개하는 대목이었다.
‘소셜 디자이너’라니....
물론 고용노동부의 직업분류에 그런 직업은 없다. 박원순 변호사가 그렇게 자처하고 다니는 것이다.

‘소셜 디자이너’라는 말을 접하는 순간, 불쾌감이 밀려왔다.
그건 박원순이라는 개인에 대한 감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소셜 디자이너’라는 말 자체가 거슬린 것이다. 전에 한 세미나 안내장에서 김 모라는 운동권 출신 인사가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이라는 직함을 내건 것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 느낌이 들었었다.

나는 사회를 디자인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회는, 세상은, 백지가 아니다. 수백, 수천년 동안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의 삶이 다양하게 펼쳐지는 공간이 사회고, 세상이다.
그런데도 사회를 디자인하겠다? 그게 가당키나 한 생각인가? 만일 사회를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디자이너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어쩔 것인가?
아마 그 디자이너는 사회를 백지처럼 만들고 싶어질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하려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로베스피에르, 레닌, 스탈린, 히틀러, 모택동, 폴 포트 같은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사회를 자기 마음먹은 대로 디자인하기 위해 폭력을 휘둘렀다.
로베스피에르는 공포정치를 펴면서 반대자들을 단두대로 보냈다. 레닌은 제르진스키의 체카를 앞세워 반동분자들을 총살했다. 스탈린은 ‘올드 볼세비키’이나 군부 최상층부를 포함해 2천만 명의 인간을 골로 보내 버렸다. 히틀러는 ‘유대인 없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몰아넣었다. 모택동이 문화대혁명이라는 난장판을 벌인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였다. 폴 포트의 크메르루즈는 농업공산주의 사회를 만들겠다는 황당한 목표를 위해 지식인들을 말살하려 들었다. 손이 희거나 안경을 쓴 사람들은 ‘지식인’으로 몰려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죽어갔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통일혁명당 사건의 무기수 신영복 교수가 그 예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히트를 쳤던 그가 감옥에서 나온 후, 어느 자리에서 그를 본 적이 있다. 그에게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한 사람이 있었다. 신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많은 문제점이 있었지만, 인간의 의식을 바꾸어 역사를 추동(推動)하려 했던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저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통일과 혁명이 이루어졌다면, 인간의 의식을 바꾸어 뭔가를 해 보겠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죽음의 굿판을 벌였을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원순 변호사는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후, “10년이면 싹 바꾸어 놓겠다”고 말했다.
그게 단순히 서울시정(市政)의 문제점을 시정(是正)하겠다는 얘기일까?
아니면 좌파들이 흔히 노래하듯이 ‘세상을 바꾸자’는 것일까?

세상의 잘못된 부분을 고쳐나가는 것은 좋다. 그러나 세상은 디자인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다. 그런 자들의 손에 맡겨두기에는 세상은, 인간의 삶은 너무나 다양하고 다채롭다. 그래서 나는 세상을, 사회를 디자인하겠다고 나서는 '소셜디자이너'들을 경계한다.



- 강철군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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