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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리

보따리
2011년 10월 17일 (월) 정인자 webmaster@ekgib.com
딸들은 나이가 들자

하나 둘 그동안 쌓아둔 세월들을

방바닥에 와르르 쏟아 붓고

이민용 가방에 차곡차곡 담는다.

가만히 내려다보는 어미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질듯 아프고

아름답게 곱게 자라준 뜨거운 시간들이

억새풀처럼 힘없이 손 흔들며 안녕을 고한다.



사람은 때가 되면 보따리를 꼭 싸야 하나보다

나도 말없이 보따리 싸서 이곳에 삶의 뿌리를 내리듯

내 딸들은 한수 더 떠서 비행기를 탄다.

텅 빈 허공이 내 방바닥에 떨어져 떼굴떼굴

굴러다니고 자식들과 함께한 세월이

뽀얀 수증기 되더니

내 눈에서 한없이 흘러내린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듯

장롱 문을 열어보고 또 열어보고

내 손과 마음정전되듯

장작개비처럼 뻣뻣해지고

떠나버리고 난 뒷자리에는

꺼져버린 신호등마냥

차갑게 식은 내 사랑만 가득 남아 있다.



정인자

경남 남해 출생.

<문학 21> (수필) <문예비전>(시)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화성지부 5대 지부장 역임.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한국경기시인협회 회원

수원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