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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구멍 같은 대관, 벗어날 길 없나

바늘구멍 같은 대관, 벗어날 길 없나
김훈동 칼럼
2011년 12월 07일 (수) 편집부 suwon@suwon.com

▲ 수원예총 회장
남은 달력 한 장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때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예술계는 어김없이 바빠진다. 내년도 전시나 공연을 위해 장소를 미리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술이나 사진, 문학 등 전시 쪽은 더욱 어렵다. 물론 공연장 마련도 만만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전쟁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만큼 치열하다.

미술전시관이나 공연장은 예술을 담는 그릇이자 화분이다. 예술의 꽃이 담겨져야 할 곳이 없어 작가들의 창작의욕이 상실되거나 묻혀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예술자산의 손실이다.

지난 주말에 수원미술전시관 대관(貸館) 심의위원회가 열렸다. 2012년에 펼쳐질 전시계획을 확정 짓는 자리다. 110여개가 넘는 개인이나 단체가 신청했다. 문제는 개최희망 시기가 몇몇 달에 치중되어 있어 5~6개가 치열한 경합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4~6월, 9~11월이 그렇다. 당연할 수밖에 없다. 더위와 추운 계절에는 관람객이 찾질 않기 때문이다. 미술전시관이다 보니 자연이 사진예술 쪽은 대관심의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이번 대관신청에서 탈락한 이들은 다른 장소를 연내에 서둘러 찾아 나서야 한다. 대부분 올 안에 내년도 대관이 확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인들의 연말은 창작 활동하랴, 대관장소 찾아 나서랴, 이래저래 마음이 급하다.

대관 심사의 경우, 단체전이 개인전시보다 우선시 되게 마련이다. 개최하는 예술인들이나 그가 속한 단체의 주소가 수원시일 경우 다른 지역보다 우선시 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옳은 처방은 아니다. 본시 예술은 개인이 펼치는 창작세계다. 개인이 전관이나 대형 홀에서 작품전을 통해 자신의 기량과 예술세계를 펼쳐보이도록 조장하고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속한 단체전에 한두 작품 출품만으로는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아주 미흡하다. 예술 잠재력을 표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에 그렇다.

이제, 수부도시 수원에도 늦었지만 제법 규모 있는 미술관을 갖기 위한 계획이나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물론 공공적인 성격의 예술 공간을 말한다. 예술과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수원으로서 미술전시관, 몇 곳의 공공전시관과 사설 갤러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 고작이니 말이다.

공간예술 쪽도 만만치 않다. 오죽하면 장안구민회관 한누리홀 대관절차가 문제가 있다고 여러 차례 민원이 발생할 정도다. 똑같은 사안인데도 경기문화재단 다산홀 대관과 정반대되게 결정되어 대관에 따른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콩쿠르 공연을 주최하는 여러 단체의 성격을 담당자의 불분명한 해석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듯하다. 보다 더 철저한 심의위원회 심사를 거쳐 편파적이지 않고 공정하게 대관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수준 높은 공연문화를 위해서도 그렇다.

수원은 도시규모에 비해 예술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그 흔한 수원시민의 예술문화회관 하나 없다. 제대로 된 미술관, 문학관, 사진전용전시관도 없다. 예술과 문화도시답게 순차적으로 세워져야 할 것이다. 전문예술인만의 공간이 아니다. 지역 예술문화의 구심체로서 시민이 예술을 쉽게 접하고 생활하는 가운데 공감의 예술체험을 통해서 향토애와 긍지를 북돋아 줄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그렇다고 턱없이 부족한 예술 공간 타령만 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우리 시대 예술문화가 보다 많은 시민을 위해서 존재하려면 기존의 형식을 현대도시 사회에 맞게 바꿔야 할 필요도 있다. 엄숙하고 규격화된 예술문화회관이나 화랑에서만 이루어지는 활동만이 예술문화의 전부가 될 수 없다. 주민들이 사는 마을마다 소박한 소규모 다목적 예술문화 공간이 마련되어 각종 전시회나 발표회, 시낭송회, 음악회 등이 열리고, 오다가다 들릴 수 있을 정도로 친근하고 손쉬운 문화형식도 바람직할 것이다. 만성적인 바늘구멍 같은 대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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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daum view(블로그뉴스)에도 실린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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