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구 (수원대교수·객원논설위원)
정치권이 매우 혼란스럽다. 한나라당은 갈수록 파열음이 커지고 있어 자칫 창당 15년만에 간판을 내릴 수도 있어 보인다. 야권도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다. 합종연횡의 격랑속에서 민주당 또한 뿌리부터 흔들리는 양상이니 말이다. 임기 4년의 국회의원 선거와 5년 단임의 대통령 선거를 동시에 치르는 20년 주기의 대시(大市) 개장이 임박한 때문이다. 중심에는 영향력이 가늠되지 않는 안철수 신드롬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대군이 도사리고 있다. '그 나물에 그 밥'인 기성 정치권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향배도 부담이다.

문제는 민생경제인데 무역 1조 달러 시대의 그늘이 매우 짙어 보인다는 점이다. 구조고도화에다 생산거점의 해외이전 지속에 따라 좋은 일자리수가 점차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내수기반이 갈수록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주목되는 것은 백화점 매출액이 33개월만에 감소한 터에 11월 자동차 내수판매대수는 전년 동월보다 무려 13% 가까이 축소됐다. 매출 부진을 못견딘 르노삼성은 이달 중에 10일간 공장 가동을 멈추기로 했다. 2000년 설립 이래 최장기간의 운휴다. 백화점 매출과 자동차판매는 중산층의 주머니사정을 체크할 수 있는 대표적 아이템이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기간의 내수부진이 중산층에까지 확대되는 탓이다. 세모(歲暮)를 앞둔 연말경기도 썰렁한 느낌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 퇴진은 또 다른 복병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지난 1일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4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의 직장인 4명중 3명은 퇴직과 함께 곧바로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야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자리 축소→ 유효수요 부족→ 내수부진→ 일자리 축소'의 순환고리가 강화되는 와중에 내년에는 국내외적으로 성장유인도 신통치 못해 청년실업률은 더 커지고 고용불안도 심화될 개연성이 크다.

더 큰 고민은 고물가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8월의 5.3%를 정점으로 이후 점차 둔화돼 10월에는 전년 동월대비 3.9%로 안정돼 가는 듯 했었는데 11월에 다시 4.2%로 반등한 것이다. 이것도 정부가 지난 11월에 새로 물가지수를 개편한데 따른 결과로 이전 기준을 적용하면 4.6%나 올랐다. 고춧가루는 전년 동기대비 무려 100% 가까이 올랐으며 서민생계와 밀접한 품목들인 소금·쌀·우유·과자류 등은 최하 10%이상 뛰었다. 물가상승률 전망수준인 기대인플레이션율도 11월에는 4.1%로 5개월째 4%선을 넘어섰다.

전세난도 주목거리다. 수도권 전세난의 진원지인 서울 강남 전셋값이 최근 들어 하락세로 돌아선 데다 내년도 전체 주택입주물량이 올해보다 많아 국토해양부는 금년과 같은 전세대란은 없을 것이라 단정하고 있으나 안심하긴 이르다. 지속적인 가격상승에 기인한 시장피로감에다 겨울철 비수기가 겹친데 따른 단기적 둔화일 뿐 전체 전세시장이 안정세로 접어들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내년에도 저금리기조는 유지될 예정이어서 월세로의 전환물량이 확대될 것이 불문가지인 탓이다.

앞으로가 더 큰 고민이다. 지난달의 고속도로 통행료와 수도권 버스요금 인상분이 당장 12월부터 물가지수에 반영될 예정인 터에 이번 달엔 전기료도 평균 4.5%나 올랐다. 일반용과 산업용 전력에만 국한했으나 시차를 두고 점차 소비자물가에 반영될 것은 불문가지다. 철도요금도 조만간 오를 예정인데다 내년 3월중엔 서울시가 하수도료를 무려 50%가까이 올린다고 통보했다. 코스트 푸쉬 압박이 아직은 제한적이나 정권교대기이니 만큼 전 부문에 걸쳐 도미노처럼 번질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유럽발 재정위기 확산에 따른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 환율전쟁, 미국과 이란과의 긴장고조 등은 또 다른 외생변수다. 서민들은 다가올 보릿고개를 어찌 넘을 지가 한걱정이나 정치권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민생회복 현안처리에도 시간이 부족한 판인데 이전투구로 소일중이니 말이다. 실망만 안기는 정치가 재연되는 것 같아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