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대통령 탈당과 안철수 바람
한국경제 원문 기사전송 2011-12-20 05:41 최종수정 2011-12-20 05:45
이재창 정치부장 leejc@hankyung.com 14대 대통령 선거를 불과 3개월여 앞뒀던 1992년 9월18일. 63빌딩에서 열린 대선 행사장에 나타난 민자당 김영삼 대통령 후보의 얼굴은 붉게 상기돼 있었다. 김 후보는 “중대발표가 있다”며 노태우 대통령의 탈당사실을 전했다. 탈당을 만류했지만 노 대통령이 듣지 않았다고 했다. 현재권력과 미래권력 간 갈등의 결과물이었다. 대통령 탈당이라는 불행한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대통령의 임기 말 탈당은 이후 공식화됐다. 김영삼(YS) 김대중(DJ)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예외없이 탈당했다. YS는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후보와의 갈등으로 당과의 단절을 선택했다. 전임자를 탈당으로 몰고갔던 YS가 비슷한 전철을 밟은 것이다. DJ는 아들들의 비리가 결정타였다. 아들들의 잇단 구속에 민심이 험해지자 “당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당을 떠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심이반에 따른 당과의 끊임없는 마찰로 임기를 1년여 남겨놓은 상황에서 당적을 버렸다. 임기 말 탈당은 후진정치 이명박 정권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의 탈당얘기가 여당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친박(친 박근혜)은 물론이고 친이(친 이명박) 의원들도 탈당 불가피론을 개진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처한 상황은 전임자들보다 못하면 못했지 나을 게 없다. 여당이 반기를 든 건 이미 오래 전이다. 핵심측근들이 비리로 구속되거나 조사를 받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가족 주변의 비리도 불거졌다. 국정 지지도는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레임덕은 없다”고 했지만 오히려 더 빨리 찾아왔다. 당장 내년 4월 총선에 빨간 불이 켜진 여당이 대통령과의 차별화 공세 수위를 높여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의 전철을 밟는 모양새다. 국민 눈에는 꼼수로 비쳐져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지면 멀리 하려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대통령의 탈당은 어떤 이유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보다 책임정치의 포기다. 국민이 대통령을 뽑을 때는 인물만 보는 게 아니다. 어느 당의 후보냐가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다. 결국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다. 정권이 힘 있을 때는 협력을 강조하다 힘이 빠지면 버리는 건 비겁한 행태다. 선진국 가운데 대통령이 인기가 없다고 탈당을 요구하는 나라는 없다. 게다가 한번도 거르지 않고 임기 말에 대통령이 당을 떠나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말 그대로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정권의 5년 성적표를 들고 당당히 심판을 받는 게 정도다. 당이 어렵다고 대통령을 몰아내고 당의 간판을 수시로 바꾸는 구태로는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망각증이 심하다 해도 벌써 잊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탈당 후 당이 거둔 성적은 참담했다. 총선과 대선에서 참패했다. YS가 당의 바람대로 당을 떠나줬지만 신한국당은 대선에서 졌다. 국민의 수준이 그리 낮지 않다. 국민의 눈에는 그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꼼수로 비쳐질 뿐이다. 대통령의 임기말 탈당이 결과적으로 국민의 정치혐오감만 더 키웠다. 안철수에게 열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의 정치에 기대할 게 없으니 밖에서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안철수 바람을 만드는 건 구태 정치권이다. 이재창 정치부장 leejc@hankyung.com ⓒ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