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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藝妓)’를 새롭게 조명하는 사람들

‘예기(藝妓)’를 새롭게 조명하는 사람들

안영화 예기보존회장을 만나다



수원은 예전부터 많은 연희가 베풀어졌던 곳이다. 수원부를 비롯해 관에서 주도하는 행사에 참여를 했다는 예인들. 대개는 ‘관기(官妓)’들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기녀(妓女)와는 다른 사람들이다. 기녀라고 하면 술을 따르고 몸을 파는 부류를 말하는 것이지만, 관기는 교방청에 속해있던 예능에 뛰어난 여인들을 말한다.

▲ 안영화 예기보존회장

‘교방청(敎坊廳)’은 감영에 설치되어 있던 기녀(妓女)들을 양성하던 기관을 말한다. 이 기녀들은 소리와 춤, 그리고 시와 글 등에 조예가 깊도록 학습을 하였으며, 주로 외빈들의 접대나 연희 등에 참석을 하여 춤을 추고 소리를 하였다. 이 교방청은 1910년 경 국권 강탈로 폐지되면서 해산되었다.

수원 예기보존회를 찾아가다

수원에서 옛 예기들의 발자취를 찾아 극화시키는 작업을 하는 예인들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도대체 어떤 단체일까 궁금하다. 수원 팔달구 장안사거리에 자리하고 있는 예기보존회를 찾아보았다.

‘수원예기보존회’는 수원의 춤의 역사를 연구, 재현, 스토리텔링하여 창작화하는 단체이다. 예기보존회는 조선 정조시대서 부터 일제시대, 현시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자료를 통한 수원의 예술적 기생들의 행보를 되돌아보고, 오늘날의 춤으로 이야기로 재구성하며, 또한 주변의 다른 예술과 공유하여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단체이다.

▲ 안영화의 교방춤

2003년도에 예기보존회가 시작을 하였으니, 이제 10년 가까이 된 단체이다. 늘 고민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무대에 올린 안영화(여, 46세) 예기보존회장을 만났다.

- 수원예기보존회를 만들게 된 경위는?

수원은 화성 행궁이 있어, 정조시대 부터 이곳에서 많은 연희가 베풀어 진 곳이죠.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 때도 이곳의 관기들이 연례에 참석을 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그 뒤 관기인 예기(藝妓)들이 많은 연례 등에서 활동을 해왔지만, 그런 것이 조명되지를 못했죠. 역사 속에서 그들이 남긴 족적을 찾아내, 그것을 스토리텔링 하여 무대에 올리고자 결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 그런 작업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우선 자료를 찾는다는 것부터가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수많은 책을 찾아보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공부를 많이 해야죠. 그런 초기 작업부터 이야기를 꾸며 무대에 올리기까지, 정말 노력 없이는 불가능 한 것이죠.

- 굳이 그 작업을 하려고 하시는 이유는?

저는 우리 춤을 추는 사람입니다. 예전부터 관에 속해있는 예기들이 추던 춤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추고 있는 것이죠. 시대가 변하면서 춤도 변화를 하기는 했지만, 지금도 교방무 등이 상당히 많이 전승이 되고 있죠. 지금 이 시대에 그녀들을 재조명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 춤의 뿌리를 찾는 작업이라고 생각을 해요. 이 작업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죠.

▲ 안영화의 장고춤

- 개인적인 질문을 좀 하겠습니다. 춤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저에게 춤이란 남들처럼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제 일상이라고 보죠. 생활을 하고 숨을 쉬고 그런 것들이 모두 춤이란 생각입니다. 저는 춤을 추고, 그 춤을 무대에 올릴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춤이란 것은 제 일상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죠.

- 춤은 언제부터 시작을 하셨는지?

6살부터 춤을 추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추지 않았어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고, 나중에 제대로 된 춤꾼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 춤을 추면서 얻은 것이 있다면?

춤을 추면서 많은 것들을 함께 배웠어요. 문화운동단체에 들어가 굿도 보고, 사물도 익혔죠. 탈춤과 풍물강사를 하면서 극적인 요소 등을 가미한 작품도 만들고요. 마당놀이 같은 것에 심취하기도 했었는데, 지금 예기보존회도 아마 그런 작업을 하면서 밑바탕이 그려진 것이라고 생각해요.

▲ 안영화의 살풀이

- 무용단 등에서도 활동을 하셨다는데?

예, 경기도립무용단 창단 멤버로 들어가 지난 해(2010년) 그만 두었어요. 근 20년 정도를 도립무용단에서 수많은 공연을 하면서 공부를 했죠.

- 특별히 생각나는 선생님들은?

무용단에 들어가 두 분한테 많이 배웠죠. 처음에 정재만 선생님께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저에게, 벽사춤 아카데미 새벽반에 나와 공부를 하라고 길을 열어 주셔서 기본이 단단해 진 것 같아요. 그 다음에 조흥동 선생님께서는 무용을 극화 시키는 방법, 연출, 음악 등을 알려주셨죠. 지금 제가 하는 작업에 정말 꼭 필요한 공부를 시켜 주신 것이죠. 그 다음에 일본에서 활동을 하셨던 정민 선생님께서는 많은 춤의 자료를 남겨주시고, 타악기를 이용한 수많은 춤을 가르쳐주셨죠.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일본까지 다녀오기도 했어요. 정민 성생님께서는 늘 저에게 ‘몸을 항상 바르게 가져라. 춤에는 드라마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곧 살아있는 춤을 추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해주시고는 했어요. 그것이 제가 작업을 할 때 꼭 기억하는 좌우명이기도 해요.

▲ 안영화의 태평무

- 앞으로의 계획은?

경기도의 예기들을 이야기로 꾸며보는 것이죠. 그냥 춤만 추는 것보다는 극화시켰을 때가 사람들이 훨씬 이해를 빨리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필요하다면 영상도 보여주고, 해설도 삽입해서 극화 시키는 작업을 하려구요. 진찬연 등에서 춤을 추고 소리를 하고, 방화수류정에서 배를 띄우고 시를 읊던 그런 예기들의 이야기를 찾아내서, 그것을 현대에 재조명 해 보고 싶어요. 이 작업을 하기 위해 더 많은 공부를 해야죠. 2012년에도 무대에 올린 이야기를 찾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 오랜 시간 고맙습니다.

예, 많이 기대해 주시고, 많이 도와주세요.(웃음)

하주성(swinews@han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