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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1 정신과 무궁화사랑 - (박형순 (사)우리꽃무궁화교육원 원장/농학박사

[기고] 3·1 정신과 무궁화사랑 - (박형순 (사)우리꽃무궁화교육원 원장/농학박사
)


  • 박형순
  • 기사입력 2019.03.04
기미년 삼월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같은 대한 독립만세.



삼일절은 1919년 3월 1일 정오를 기해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며 민족의 독립을 선언한 날이다.

만약에 삼일절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까.

처음부터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고 다시 나라를 되찾으려 수많은 젊은 우국열사들이 피로써 다시 찾은 이 나라에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어야 한다.

특히 무궁화는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에 우리 국민과 애환을 같이하며 겨레의 얼로 민족정신을 상징하는 꽃으로 확고히 부각되면서, 무궁화는 하나의 생물(꽃)이 민족의 이름으로 핍박을 받는 것은 우리무궁화 뿐이다.

일제 강정기에 무궁화에 온갖 악의적인 일을 저질렀다.

나라를 강탈 한 것도 모자라 우리의 정신까지 박탈하려 했고 무궁화를 국민들과 멀어지게 하려고 가진 박해를 가했다.

이때 무궁화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무궁화를 보고 있거나 만지면 ‘꽃가루가 눈으로 들어가 눈에 핏발이 서고 눈병이 난다’고 하여 ‘눈의 피꽃’이라 하였고, 또, ‘가까이 보거나 닿으면 꽃가루가 살갖에 떨어져 부스럼이 난다’하여 ‘부스럼 꽃’이라하고 헛소문과 악선전을 한데에서 비롯되었다.

일제 때 무궁화와 태극기가 독립운동의 표상이기 때문에 독립운동을 막기 위한 말살정책으로 무궁화 꽃을 피우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나무를 태우고 홀대 하여 꽃을 못 보게 하였다.

이때 무궁화 꽃을 몰래 보기위하여 집 뒤편에 보이지 않는 곳에 심어 놓았다.

그래서 지금도 오랜 부정적인 편견 때문에 생울타리로만 생각하고 그늘 밑에 심어 놓고 너무 가지를 마구잡이로 잘라 꽃을 많이 볼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무궁화는 햇빛을 좋아하는 다비성 식물이다.

꽃은 7월 중순부터 서리가 올 때까지 피는 여름 꽃이다.

이시기에 한서 남궁억(南宮憶)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공직자·언론인·교육자·종교인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벌였으며, 삼천리와 ‘무궁화’를 화두로 무궁화보급운동에 심혈을 기울여 무궁화사랑이 곧 나라사랑임을 몸소 실천한 독실한 신앙인으로 청렴하고 강직한 자주독립과 국권회복을 위해 노력한 민족운동가로 역사책을 비롯하여 서체본과 많은 작사를 한 저술가로서 조금의 게으름도 없이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맡겨준 사명을 감당한 인물이다.

무궁화는 오천년여 동안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자리매김 되어 나라꽃이 됐으며 무엇보다 한민족의 혼과 정신이 깃든 한겨레의 꽃 무궁화이기도 하다.

또 일제 강점기 36년 동안 강인함과 끈기로 일본에 저항하는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의 상징의 꽃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나라꽃 무궁화에 대한 인식이 점차 희박해지면서 앞으로는 어린 학생들이 우리 무궁화가 국화(國花)라는 사실조차 모르게 될지 염려가 된다.

애국가를 비롯하여 연면한 민족정서와 자주의식 그리고 우리의 독특한 문화코드를 표상하는 우리나라 대통령 집무실 휘장을 보면 봉황새 둘이 샤론의 꽃 무궁화 꽃을 감싸고 있는 징표로 오늘날 까지 이끌어 와 여러 층위의 이미지에 널리 인용되고 있지만 무궁화 꽃에 대한 관심과 보호수준은 초라하고 관심권 밖으로 밀려난 것은 사실이다.

그동안 법적근거가 없어 나라꽃 무궁화가 보호받지 못하고 관리도 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 나라꽃에 관한 법률안을 하루속히 만들어 나라꽃(國花) 무궁화를 법적으로 보호하고, 이를 통해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양하고자 대한민국 나라꽃에 관한 무궁화가 나라꽃임을 법으로 제정해 존엄성이 유지되도록 해야 된다고 생각 한다.

박형순 (사)우리꽃무궁화교육원 원장/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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