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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밥’, 먹고 남은 음식, 즉 ‘잔반’을 희화화한 군대 명사다. 군대에선 ‘삼시세끼’ 챙겨 먹는 밥을 뜻한다. 밥 숟가락 놓고 돌아서면 배고픈 군인들이 만들어낸 은어(隱語)다. 사제(속세)에선 ‘연륜’을 일컫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지난 21일 만난 최금식(62) 사장에게선 진한 짬밥의 향기가 났다. 창사(創社)이래 처음으로 행정직과 기술직을 ‘짬(섞는다는 뜻의 군대 용어)’시켜 놓고 직원들과 어울려 노래방에서 ‘나는 문제없어’를 열창한 배짱.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장 최초의 인사청문회에 도전장을 던진 용기. 남경필 경기지사가 가보자는 길을 앞장서겠다는 패기. 부하직원을 ‘후배’라고 칭하는 여유…. 한국토지공사(현 LH공사) 최초의 기술직 인사처장이란 기록을 남긴 그는 이제 토공 30년 짬밥의 힘으로 경기도시공사에 신(新)바람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
―경기도의회 인사청문회의 첫번째 주인공이었다. 청문회를 실제 겪어본 소감이 궁긍하다.
“당시에는 왜 이런 청문회까지 하면서 (사장직에)지원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해보니 긍정적인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업무 파악을 빨리할 수 있었고, 경기도의회가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강도는 어땠나
“도의원들의 철저히 준비한 것 같았다. 깊이 있는 질문도 많았다. 강도는 센 편이있다. 인사청문회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있는데 굳이 고르라면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고 생각한다.”
―인사청문회 유경험자로서 이것만은 고쳤으면 하는 게 있을 것 같다.
“인사청문회는 자질이나 능력을 평가하는 제도가 돼야 한다. 나 같은 경우 공공기관에서 일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재산이나 자녀 문제가 없었는데도 상당히 곤욕스럽게 몰아가는 부분도 있었다. 그 사람이 직무를 잘할 수 있는지가 검증의 본질이 돼야한다.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인물이라면 이미 법으로 제재를 받았을 것이다. 실무능력과 자질로 인물을 평가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취임한 지 넉 달이 조금 넘었다.(최 사장은 지난해 9월 16일 취임했다) 직전까지 이사회 의장을 지냈는데, 어떤 점이 다르던가.
“의장 때는 중요한 안건만 보고받았기 때문회 회사를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다. 의장때는 뭔가 어설프다고 느꼈는데 막상 사장으로 일해보니 잘 훈련된 직원과 인적자원이 갖춰져 있더라. 직원들이 신바람 나는 회사를 만들면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열심히 하면) 경기도민에게 참 좋은 회사라는 인상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신바람나는 회사는 어떤 회사인가.
“신바람이 나려면 일단 자신의 일이 재미있고, 즐거워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상하간 소통이 중요하다. 직원간 관계가 원만해야 신바람 나는 회사가 된다. 월급, 복지 등은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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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소통을 강조한다.
“소통은 속을 내놓고 진심으로 얘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서로 관계가 만들어진다. 서로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면 많은 것들이 편해진다. 일도 즐거워진다. 소통은 거창한 게 아니다.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넉달 만에 첫 인사를 단행했다. 일단 파격, 혁신 이런 단어가 떠오른다.(최 사장은 창사이래 처음으로 공채 출신을 본부장으로 승진시켰고, 인사처장에 기술직을 임명했다)
“2급(처장급) 이상은 ‘경영직’으로 분류해 기술직과 행정직의 벽을 없앴다. 이렇게 해야 기술직, 행정직 사이의 벽이 깨지고, 부서 칸막이가 사라진다. 기술직이 인사처장을 하면 사업부서와 소통이 쉬워진다. 직종간의 벽을 없애서 업무소통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토공 30년 경험치인가.
“국가 공기업중에서 기술직이 인사처장을 한 것은 내가 처음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내부 반발이 심했지만 행정직과 노조에서도 모두 동의해서 인사처장을 오래했다. 3년했다. 인사처장때 상위직 직급 벽을 없앴다.”
―기술직 인사처장에 대한 행정직의 불만이 있을 것 같다. 행정직은 자신들의 보직 하나를 빼았겼다고 생각할 것이다.
“내부적으로 반발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현장에서 일하는 사업처장직에 행정직을 보냈다. 충분히 능력이 있는 인재들이다.”
―노조와의 관계는 어떤가.
“회사 발전에 대해서는 노조도 긍정적이다. 자신들의 영역만 지키려 하지 않는다.”
그는 긍정주의자다. 매사 부정적인 사람을 경멸한다고 했다. 자신이 믿는 긍정의 힘을 임기 3년의 경영 목표에도 녹여 넣었다. 경기도시공사 최초의 해외 시장 개척, 따복(따듯하고 복된)기숙사 건립 등등. CEO평가에서 마이너스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사업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남경필 지사가 경기도시공사의 해외 진출 계획을 발표했다.
“해외 진출은 시도해볼만 하다. 우리나라의 신도시 기술은 세계적이다. 동남아 시장 같은 곳은 진출할 여지가 많다. 중국도 저개발된 곳에 도시개발 기술을 전수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금력 있는 현지 회사와 연합해 최소한의 지분참여만 하는 방식으로 공동개발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경기도 기업이 함께 진출할 수 있다면 경기도 측면, 국가적 측면에서 기반을 넓혀나갈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이번에 태스크포스(TF)조직을 만들었다. 해외 담당팀도 만들었다. 지속적으로 중국·동남아 시장을 개척해 나갈 계획이다.”
―제2판교테크노밸리는 경기도시공사에서 최초로 제안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개발 지분 65%를 LH공사가 가져갔다.
“오랫동안 검토했던 것은 맞다. 하지만 정부 정책기조에 따라 국토교통부가 주도하게 됐다.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누가 하더라도 빨리해서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고 지역경제활성화가 되면 좋은 것 아닌가?”
―LH공사가 지방으로 이전하면 경기도는 무주공산이 된다.
“LH가 지방으로 내려가면 지방공기업이 될 수 밖에 없다. 서울은 새롭게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여건이 못된다. 경기도는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있다. LH가 내려가는 틈을 타서 회사가 질적인 면에서 LH를 따라잡는 것을 목표로 해보자고 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공격적으로 일하려면 인재가 필요할텐데, 현원이 동결된 상태나 다름없다.
“가장 아쉽운 점이다. 기업은 사람이다. 사람이 연속성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데 신입 직원을 뽑아서 훈련시키려면 3~4년씩 걸린다. 현재는 부채 문제 때문에 조직 규모를 통제하고 있다. 발전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내면 조직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지난해 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결국은 사람이다. 사장 공석이 길어지면서 제대로 관리하고 대응할 수 없었다고 본다. 직원들이 부패해서 나타난 문제가 아니다. 사전 예방활동이 없었다. 직원들은 경영평가를 더 무섭게 느끼지만, 청렴도는 회사에 대한 신뢰도다.”
―임기가 3년+a다. 이루고 싶은 목표가 궁금하다.
“전 직원이 좋은 회사를 다닌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직원들이 충분히 애쓰고 노력해서 외부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회사에 대한 애착심으로 무장하면 외부에서도 당연히 잘하게 된다. 외부의 신뢰를 얻게되면 좋은 회사를 만들수 있게 된다.”
그는 지난해 말 수원 광교신도시에 전셋집을 얻어 이사했다. 일면식도 없던 자신을 CEO로 낙점해준 남 지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세상이 인정하는 회사로 키워나가기 위한 교두보다. 4년 여만에 전 직원이 참석하는 비전선포식도 연다. 넉 달간 준비를 끝내고 이제 ‘최금식발’ 신바람 경영을 시작하려는 것이다. “후배들에게 적당히 있다가 갔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이렇게 달라졌고 큰 성과를 냈다는 기록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목표는 허언에 그칠 것 같지 않다. 최 사장은 1880년 토공에 입사한 후 2009년 퇴사할 때까지 토목시공기술사, 토목기사·지역 및 도시계획기사·건설안전기사·소방설비기사·측지기사 1급, 공인중개사 등 7개의 자격증을 따냈다. 비전선포식에서 마이크를 들고 ‘나는 문제없어’를 선창하며 ‘다같이’를 외치는 최 사장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대담=한동훈 정치부장
사진=이정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