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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가지의 칸 ===/◇신문.기고.사설.칼럼.방송.

[노민호의 혼자생각] 도그마

[노민호의 혼자생각] 도그마

오래전 IMF때의 일입니다. 당시에는 '금모으기운동'같은 전 세계가 놀랄 단결의 모습도 보여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대규모의 해고가 줄을 이었습니다.

이때 '철밥통'이라고 불리던 공직사회도 크게 긴장을 했는데 이른바 조직축소 바람이 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수원시에서는 시청의 조직축소를 위한 공청회가 열렸는데 방청객 발언순서가 되니
정말 폭소를 자아내는 모습이 연출되었지요.

영화배우 남궁원씨처럼 멋지게 생긴 어떤 사람은 마이크를 잡고 유창한 영어로 뭐라고
한참 떠들더니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자 '미국의 조지 워싱턴 장군이 미국 독립전쟁 당시에 포로로 잡혀서
죽게되자 '나라를 위해 바칠 목숨이 하나뿐이라는게 원통하다'는 말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더니 '그렇기 때문에 수원시 민방위과가 없어져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두개의 일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설명없이 그냥 그렇게 한참을 얘기하다가 내려갔습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쓰던 갓을 쓰고 도포를 입고 나온 어떤 할아버지는 
'사람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옛 얘기를 한참 하더니 '지적과'를 없애면 곤란하다는
주장을 펼쳐 보는 이들을 어이없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아무런 연관도 없는 여러가지
사실에서 
자신이 믿고 싶은 사실만을 가져다가 그것을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는 것을
'도그마'라고 합니다. '도그마'에 빠진 사람들은 달리 어떻게 설득할 방법이 없습니다.

 

얼마전 수원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 사건이후 수원시는 외국인 강력사건
예방을 위한 '종합대책'을 내놨습니다. 
'종합대책'의 핵심은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수원시의 권한으로 가능한 일일까?
사실 지방자치 제도를 좀 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 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럼 왜 권한도 없는 일을 하겠다고 발표를 했을까요? 강력사건이 날때마다 실질적 권한을
가진 경찰보다는 행정기구에 책임을 묻는 일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임명직인 경찰청장보다
선출직인 시장군수에게 욕하기가 훨씬 편한 현실적인 이유도 있고 권한의 범위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도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범죄예방을 위한 방범활동은 전적으로 경찰의 업무고
권한입니다. 
오래전부터 '자치경찰'을 도입해서 기본적인 질서유지와 방법활동의 권한을
기초지방정부로 넘겨달라고 요구했지만 
참여정부 이후 이 논의는 아예 지하로 잠적해 버렸지요.

 

그런데 이런 현실을 알만한 사람들도 수원시의 '종합대책'을 가지고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문제점을 지적하려면, '권한도 없으면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고 먼저 따져야 하는데

그런 논의는 전혀 없고 '내용'만을 가지고 문제를 삼습니다.

권한없는 대책을 내는 것도, 권한 없는 대책의 내용을 따지는 것도 알고 보면 '도그마'의 일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