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0.jpg경기도 화성군 서신면 상안리 구봉산(九峰山)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 둘레 1,200m.

 

남양반도의 서신·송산·마도면의 경계가 교차되는 중심부 가까이에 위치한 해발 165.7m인 구봉산(九峰山) 정상부와 동향한 계곡 및 서남쪽 능선을 에워싼 3중의 성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산상에 오르면 서해의 여러 섬들이 그림과 같이 바라다 보인다. 

산성의 전체 모양은 남북으로 길다란 장방형에 가까우며, 작은 계곡을 두른 포곡식에 가까운 형식을 취하고 있는 본성(本城)이 있고, 서남쪽의 남문 밖으로는 한층 낮아진 능선 대지를 다시 두른 부곽(副郭)이 이중으로 외성을 이룬다. 뿐만 아니라 이 외곽의 서남쪽 능선을 따라 토루가 계속 이어져 행성(行城)을 이루며 보다 서남쪽의 염불산(念佛山) 봉수 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지역은 처음 백제(百濟)의 영역이었다가, 한때 고구려(高句麗)의 영토로 당성군(唐城郡)이라 하였으나, 신라(新羅)가 이 지역을 점령하게 되자 당항성(唐項城)이라 하고, 서해 바다를 건너 중국과 교통하는 출입구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기록에는 이 산성을 고당성(古唐城)이라 하여 당항성과 관련될 수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 신라 하대(下代)에는 당성진(唐城鎭)이 설치되고, 신라의 왕도(王都)에서 상주와 삼년산성을 거쳐 이곳에 이르는 길을 당은포로(唐恩浦路)라 하였다. 
 

 

현재 동·남·북문지와 우물터, 건물지가 남아 있으며, 테뫼형〔山頂式 : 산 정상을 둘러싼 산성〕과 포곡형(包谷形 : 계곡과 산 정상을 함께 두른 산성)이 결합한 복합식(複合式) 산성으로 일명 당항성(黨項城)이라고도 한다. 이 지역은 한때 고구려의 영토로 당성군이라 하였으나 원래는 백제의 영역에 속하였다.

 

이 산성은 백제시대의 테뫼형 산성이 축조된 뒤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하게 되자 백제의 영향을 받아 백제산성의 독특한 양식인 복합식 산성으로 축조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산성의 테뫼형 부분은 다시 2()로 나뉜다. 현재까지 형태가 뚜렷이 남아 있는 것은 포곡식 산성인데, 그 평면형은 대략 긴네모꼴을 이루고 있다. 서북을 면한 성벽 길이는 약 320m이며, 나머지 3면을 포함하는 전체의 길이는 약 1,030m이다.

이 성의 문지로 북문지와 남문지는 있으나, 수구(水口)부분에 있어야 할 동북문(東北門)의 위치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사적 보수를 위하여 새로 만들어진 산성 진입로가 통과되는 지점이 동문지로 추정된다.

 

북문지는 성 서북쪽에서 동남으로 약 6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너비는 약 4m이다. 이 문지 부근을 통과하는 부분의 성벽 높이는 약 2.5m, 밑부분의 너비는 약 7∼8m이다. 성내에는 읍지(邑誌)에 전하는 조선시대의 망해루(望海樓)로 추정되는 건물터에 초석들이 남아 있다.

 

한편, 테뫼형 산성은 성의 서남쪽의 제일 높은 곳을 둘러서 축조한 흔적을 찾을 수 있고, 둘레는 230m이나 포곡식 산성이 증축되고 난 뒤 흡수되어 그 기능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의 테뫼형 산성은 서남쪽의 제일 높은 곳에서 밖으로 뻗은 높이 140m의 언덕 위에 길이 90m, 너비 50m, 둘레 250m로 쌓여 있다.

 

이 당성이 있는 남양(南陽)은 지금은 화성군이지만 신라 경덕왕 때는 당은군(唐恩郡)으로서, 신라가 서해를 통하여 중국과 교통하였던 출입구로서 중요한 길목 구실을 하였다. 이 성은 당항성과 관련되는 가장 중요한 유적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