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규 경제부장
수원시민들이 자랑하는 세 개의 '성'이 있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조선시대 최초의 계획도시이자 거중기를 사용해 지은 화성(華城), 2002년 월드컵 4강의 주역이자 천재 감독인 히딩크가 발굴한 세계적 축구스타 박지성, 또 하나는 감히 2위조차 넘보지 못하는 세계 초일류기업 삼성(三星) 등 세 개의 성이 모두 수원에 있다는 의미에서 '수원=삼성'의 도시라고 한껏 이미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덕에 수원을 방문하는 내·외국인 관광객이나 방문객들조차 '수원이 이런 엄청난 곳'이라는 설명을 듣게 되면서 대단한 도시를 둘러봤다는 뿌듯함에 고향과 모국에 되돌아가 입으로 전하는 수원 홍보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필자도 20년 가까이 수원에 살고 있으나 등잔밑이 어둡듯 이런 대단한 도시 주민이란 사실에 새삼 어깨를 들썩일 때가 많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인가? 2013년 새해 한 달도 채 안돼 터진 삼성전자 반도체 화성사업장 불산 누출사고가 삼성의 도시 수원에 날벼락을 내렸다. 엄격히 수원에서 발생한 사고는 아니지만 삼성전자 수원센터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5㎞ 남짓한 곳에 삼성반도체 용인사업장과 화성사업장이 포진해 있다. 다시 말해 인근 도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사고가 났지만 화성시와 용인시 경계지역에 살고 있는 동남부권역 수원시민들이 수만 명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주민이 사는 곳과 사고현장은 고작 2㎞ 안팎이다. 사고가 나자마자 용인시나 화성시보다 가장 먼서 수원시가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비상대응시스템을 가동한 것도 이 때문이다. 수원시 자체 조사로 '다행히 사고 발생 시점 바람 방향이 수원시내로 불지 않았다'는 말을 강조할 정도로 시민들의 불안한 마음을 우선 헤아리는게 급선무였다.

어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수십번 생각해도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최초 사고시점, 고의 은폐의혹, 경기도 및 검경 사법기관, 환경 및 노동관서 등 어느 기관조차 삼성이 쳐놓은 철통 바리게이트를 넘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인터넷상에도 삼성을 지탄하는 격한 반응들이 폭주했다. 한 네티즌은 "미국의 한 보험회사 관리감독관이었던 하인리히의 노동재해 사고 분석 이론인 하인리히 법칙까지 들이대며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은 사고 전력이 더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 이론은 노동재해로 중상자 1명이 발생하면 사고 이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또 운좋게 사고는 피했지만 부상을 당할뻔한 잠재적 상해자가 300명이 있다는 것이다.

전문 진단기관이 사고 주변에 대한 정밀 오염도를 몇차례 측정한 결과, 공기중 불산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는 발표는 그나마 다행이다. 삼성은 지난해 사상 최대의 매출실적과 영업이익을 냈다. 삼성은 이에따라 당초 예정대로 사고발생 4일후인 지난달 31일 2조원에 달하는 초과이익분배금(PS)을 임직원에게 지급했다. 'PS'는 삼성 계열사나 사업부별로 연초에 세웠던 경영목표를 초과 달성할 경우 초과 이익분의 20% 내에서 임직원 연봉의 12∼5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인센티브 제도다.

솔직히 대다수 국민들이 "대한민국에 삼성이 없었다면…"하며 추락하는 세계 경제 위기상황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만큼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론적 해석이 잘 되지 않는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고 있는 삼성에 국민들이 면죄부를 주는 심정의 관용을 베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나가는 삼성의 기(氣)를 꺾으면 대한민국이 꺾이고 초일류 기업답게 '삼성이 하면 뭔가 다르다'는 식의 믿음이 크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이번 불산 누출사고는 사안의 경중을 떠나 국가 전체로 미치는 파장이 크다. 도대체 삼성마저 이런 식이라면 대한민국은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고들 한다. 이번 사고에 대해서는 당연히 책임을 진다지만 그동안 쌓아왔던 국민적 신뢰와 세계시장에서 누렸던 일류 이미지가 곤두박칠치는게 아닌가 하는 국가적 걱정이 더 큰 현안이다. 이제 삼성이 삼성답게 속시원한 대답을 국민앞에 내놓아야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