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태영 수원시장이 3년 됐다. 임기 1년 남겨놓고 있다. ‘염태영 시대’의 평가가 자연스럽게 내려질때다. 3년전 염태영의 수원시장 당선은 사실 의외였다. 당시 시민들의 눈엔 낯설게만 다가왔다. 그래도 수원시민은 ‘염태영’을 뽑았다. 왜그랬을까. 한마디로 수원시민 선거의식이 크게 바뀐것이다. 인구 100만명을 훌쩍 넘기면서 수원은 대도시로의 수원 진입은 시장 선택 기준을 크게 바꿔 놓았다. 대도시형 선거 의식으로 말이다. 흔히 말하는 ‘삶의 질’을 물질 중심서 ‘개치’ 중심으로 수원 시민 의식이 크게 변화된 것이다.
지난 3년 ‘염태영’은 사실 뚜렷이 돋보이는 시정(市政)이 별로 없었다. 흔히 ‘단체장’의 평가는 보이는 성과에서 버릇되기 마련인데도 그랬다. 하지만 염태영의 지난 수원 3년은 크게 보이는 시정이 없는데도 그의 인기는 지금 전임 시장들을 부끄럽게 할만큼 크게 높다. 특히 서민쪽에 다가설수록 그런모습은 더하다. 참으로 이상하다.
수원 ‘자치시대’의 지난 20년은 솔직히 ‘토착인’만의 시대였다. 그러다보니 선거도 몇몇 ‘토박이’들의 의도에 따라 이루어지다시피 했다. 이른바 유입(외지)인구의 대부분은 그동안 선거에 관심이 거의 없었다. 누가 시장이 되건, 또 국회의원이 되든 고민하는 경우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지난 20년의 수원 선거는 토박이 몇사람의 손에 놀아나는 꼴이 됐다. 하지만 20년이 지나면서 외지인의 삶의 정착이 굳어지고, 점차 ‘수원인’이 되면서 사람 선택을 위한 정보에도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변환점이 바로 지난 염태영 수원시장 선거쯤으로 보는 것이 옳다.
염태영은 전형적인 베이비부머 세대다. 그래선지 ‘수원인’이면서 염시장은 이른바 토박이 의식이 거의 없다. 대신 시민들과의 ‘대화형’이어서 지난3년 수원시장을 하면서 시민들 모임마다 빠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시민 만나기를 좋아했다. 전임 시장들과 크게 대비되는 현상이다. 게다가 시민운동을 한 탓인지 시민과의 접촉이 매우 자연스럽기 까지 했다. 염시장이 ‘자치’이후 역대 수원 시장에서 가장 폭넓게 인기가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염태영’에겐 자치단체장으로 꼭 갖춰야할 대목이 있다. 시정에 대한 과감한 결단이 그것이다. 결단은 시기를 놓치면 그만이다.
염시장이 시민과 약속한 광교산 정비나 수원의 3시(수원·화성·오산) 통합은 사실 수원 미래의 결정적 역할이랄 수 있다. 수원의 매우 중요한 과제가 이 두가지다. 특히 이 두가지는 이미 시민과의 약속이었던 사안이다. 특히 광교산은 수원 시민 삶의 상징이면서 다른 역대 시장들이 그르쳐 놓은 산물이기도 하다. 어느 도시나 산의 상징성은 시민의 자존심이며 바라보는 삶의 가치랄 수 있다. 앞으로 수원이 대도시로 바뀌어 직할시가 되었을때를 상정할 필요가 있다. 염시장이 구상하고 있는 광교산 ‘양성화’ 따위의 대책은 한마디로 수사(레토릭)일뿐 수원시민이 바라고 있는 광교산의 참모습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또있다. ‘행궁’성안에 현재 이루어가고 있는 행정기관(팔달구청) 건설도 두고두고 미래 수원에 큰 흠집으로 남기 십상이다. 무거운 시정 결단이지만 염시장에겐 꼭 필요로 하는 수원시민 모두의 바램이다.
수원은 이미 ‘新수원’ 시대를 맞았다. 전국 모든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대도시 길목에 서있는 것이 오늘의 수원인 것이다. 염시장의 선택이 수원사(史)에 길이 남길 이유와 책임은 그래서 크고도 넓다. 어떻게 보면 수원의 전환점에 염시장의 시민 선택은 결코 우연일 수 없다. 그만큼 책임이 무거울 수 밖에 없다. 무거운 과제앞에 주춤 거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뜻있는 시민들은 답답해 할 때가 많다. 물론 염시장의 공직풍토개선은 크게 주목할만한 칭찬거리다. 한 예로 전임자들에서 찾아볼 수 없던 인사의 공정성이 대표적이다.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고 있다. 진보의 가치랄 ‘평등’과 ‘약자보호’에서 우러나온 결과물 일거다. 전임자들의 ‘학교파벌 지역파벌’로 인한 ‘끼리끼리’ 문화는 이제 많이 바뀌었다. 의도적 인사 파괴를 통해서도 꼭 필요했다. 수원의 변환점에서 염시장의 선택은 그에 걸맞는 과감한 행정이 반드시 수반돼야 하는 이유다. 잘못된 결단도 안한것 보다는 낫다는 말이 있다. |